허지점장의 개인적인 일에 대한 거절뿐만 아니라 대림대리점 사건 이후로 지점장의 나에 대한 악의적인 복수는 더욱 심해졌다. 일반적으로 가전영업 담당자는 4~5개의 대리점을 맡으며 담당 대리점들을 밀착관리하게 되어 있었으나, 지점장은 다른 담당자와 문제가 생겨 처치곤란이거나, 회사에 호의적이지 못한 대리점들만 골라 하나 둘씩 내게 떠넘기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나는 어느새 매출도 고만고만하고 문제도 많은 10개의 대리점을 맡게 되었다. 매출실적이 적다고 남들보다 두 배나 많은 대리점 수가 맡겨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산재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밤늦도록 10개의 대리점 중 어느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매일 방문하였다. 그렇게 회사에 복귀했을 때는 이미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에서 나만 혼자인 경우가 허다했다. 나는 매일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외근 중에 발생했던 일을 정리하고, 주문 받았던 것을 전산에 입력하는 일을 마치고 나서야 퇴근하였다.
그렇게 집에 와서 어머니가 차려 준 밥을 먹을 때가 보통 10시였으니, 집에서 9시 뉴스를 본적이 언제인지 모를 정도였다. 게다가 연로하신 어머니가 매일 밤 늦게 음식을 차려주시는 일도 내겐 큰 아픔이었다. 그래서 그 후 나는 간신히 어머니를 설득해서 서울을 벗어난 경기도 화정 쪽의 작은 오피스텔을 빌려 독립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노력은 점차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힘든 일만 시켜서 나를 내보내려고 했던 지점장의 의도와는 달리, 내가 맡았던 문제 대리점들의 매출이 서서히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긴 회사에 버림받고 용산전자상가에서 제품을 사입해서 팔 던 곳들이 대부분이었던지라, 회사에서 매입하는 실적은 바닥을 친 곳들이나 다름없었으니 더 이상 떨어질 것도 없는 공포의 외인구단 같은 대리점 사장들이었다.
그러다 새로 바뀐 젊은 녀석 하나가 매일 정성을 다해 찾아간 노력에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한 대리점 사장들은 점차 사입을 줄이고 젊은 담당자에게 주문을 늘이기 시작하였는데, 과거 워낙 적었던 실적이었던 것이라 금방 눈에 띄게 호전된 실적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더욱이 남들보다 많은 10개의 대리점이 아닌가?
그러자 지점장은 가장 건실해진 여의도대리점을 장대리에게 넘겨주며, 장대리와 감정적으로 대립된 말미대리점을 내게 맡기는 식으로 나에게 압박을 더욱 가해왔다. 시흥대로변의 말미고개라는 곳에 있는 말미대리점 사장은 몇 주 전 회사로 찾아 들어와 식칼을 뽑아대며 책상을 뒤엎고 또 다시 제품을 밀어내면 다 죽여버리겠다고 아우성을 쳤던 사람이었다.
당시 담당 선배인 장대리는 오랜 베테랑이었지만, 모두가 다 아는 악명 높은 말미대리점 사장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말미대리점은 그래도 매출이 꽤 큰 곳이라 회사에서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어느 누구도 담당을 대신 맡고 싶어하지 않아했기 때문에, 결국 그 몫은 나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대리점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공터에서 20여 분을 서성거렸다가 간신히 용기를 내어 대리점을 향해 첫 발을 내디뎠다.
“안녕하세요!”
큰 소리로 인사를 했지만, 때마침 제품이 들어와서 전 직원들은 박스를 나르느라 여념이 없었는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잠시 머슥하니 어쩔 줄 모르고 서있던 나는 이내 윗 자켓을 벗고 함께 박스를 나르기 시작했다. 상당히 많은 제품이 들어와서 한 여름 무더위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제품을 나르며 자연스럽게 교환되었던 눈길이나 간단한 대화로 어느 사이 대리점 직원들과 처음의 서먹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박스를 모두 나르도록 대리점주인 한사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함께 노동의 즐거움을 공유했던 그곳 영업부장을 통해 그는 말미 대리점의 상황과 한사장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눌 수가 있었다. 그런 사이에 사무실로 한사장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다시금 큰 소리로 인사했다.
“어~ 왔나?”
간단한 인사말을 던지며 한사장은 나를 완전히 무시하는 척 소파에 앉으며, 한동안 신문을 뒤척이고 나서야 마지못해 나에게 눈길을 돌렸다.
“좀 이리로 앉지”
여직원이 가져다 준 커피를 저으며 한사장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인상이 썩 좋지 않은 것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에 순간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나는 간신히 내색하지 않고 한사장을 마주하며 자리에 앉았다.
“아니 말이야….”
한사장은 말을 꺼내려다가 열을 참지 못해 말문이 막힌 사람처럼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닫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좀 마음이 가라앉았는지, 그는 의외로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내가 신입사원에게 말해봐야 소용없겠지 하고, 아무 말 안 하려고 그랬는데 말이야~!”
한사장은 또 다시 말을 멈추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내 그간 참았던 불만들을 한 번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담당 바뀌자 마자 이럴 수가 있나, 어? 내가 주문도 안 한 것이 아침부터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단 말이야. 오늘 물건 들어온 게 얼마인지 알아? 사람이 숨돌릴 시간을 줘야지, 좀 살만하다 싶으면 어찌 이리 밀어내고 지랄들이야? 내가 지난 번에 회사 들어가서 또 한번 밀어내면 식칼로 다 찔러 죽인다고 한 거 알아 몰라? 그런데도 또 밀어내? 네 놈이 죽고 싶어 환장한 거 아냐?”
“네? 아…, 저….”
상황파악이 잘 안된 나는 당장 뭐라 할 말을 잃었다. 단지 오늘 아침 장대리가 어깨를 두들기며 격려하던 중에, 지점장이 얼굴 한 구석 가득 느끼한 표정을 지으며 ‘오늘 처음이라 고생 좀 할 꺼야’ 하면서 슬쩍 던진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이제야 알 것만 같았다.
“그래, 신입사원인 당신이 뭘 알겠냐 만은, 본사에서 자꾸 이렇게 심하게 하면 나도 이 개똥같은 대리점 때려 치울테니, 회사 들어가면 당신 지점장에게 분명히 전달하라고! 알았어?”
한사장은 말하면서 제풀에 더욱 흥분됐는지 목소리가 점점 더 격앙되어 갔다. 그리고는 나머지 커피를 단숨에 들이키더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벌떡 일어서 훌쩍 밖으로 나가버렸다.
참담한 심정으로 대리점을 나온 나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지점장은 여직원을 시켜 나 몰래 마구잡이로 물건을 밀어 넣고, 담당자를 나로 바꾼 것이었다. 이 고약한 대리점 사장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꼬이기 시작하여 무척 오랜 기간 나는 이 대리점 사장 때문에 고역을 치루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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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점장에 대한 과거의 상념에서 벗어난 신대리는 그 동안 생각하며 조금씩 준비했던 얘기를 강소장에게 모두 털어 놓았다. 그의 얘기는 모든 상황의 핵심을 찌르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강소장조차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그 동안 아무 일도 안 했다는 거야? 임마, 그건 업무적 배임 행위야. 이런 게 진작 됐으면 내가 이렇게 고생 안 해도 되잖아.”
강소장은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되는 듯이 말했다.
“아니, 이건 나도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대책 안까지 생각한 거야. 그 동안은 나도 잘 몰라서 마케팅부터 차근차근 공부하고, 우리회사 마케팅 전략의 문제점들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데 시간을 바칠 수 밖에 없었어.”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거야?”
“내 생각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야지. 이제부터는 이팀장 몰래, 나를 위한, 아니 진정으로 우리회사를 위한 다른 방향의 조사를 시작해야 해. 그렇게 하려면, 또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내 생각에 2개월 동안 별도로 조사하고 정리해서, 내년 1월 초면 계획서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아.”
“좀 더 빨리 하면 안되겠니? 이미 다 준비되어 있다며? 이번 사업계획에 반영해야지 늦으면 나중에 힘들어져.”
강소장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신대리는 단호했다.
“이게 제대로 된 객관적 근거를 마련하지 못하면, 윗 사람들에게 힘으로 밀린다. 권력보다 강한 힘이 바로 팩트(Fact)를 바탕으로 한 로직이란 말이야. 더욱이 상대가 김상무와 이팀장이라면 꼼짝도 못할 정도로 더욱 완벽해야 해. 섣부르게 덤볐다가 죽도 밥도 되지 못할 수 있어. 그리고 나 혼자 하기에는 많이 벅찬 일이야. 네가 시간내서 도와 줄 수도 없잖아.”
“그래, 알았다, 알았어. 어디 한 번 작품 만들어봐라. 내가 무진장 밀어줄게.”
“그런데 벼랑 끝으로 내몰지는 말라. 벌써 떨어져 죽기는 싫다. 하하”
친구와의 만남은 언제나 유쾌하고 뭔가 통하는 게 있어서 좋다. 이제 신대리도 깊은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신대리와 강소장은 오랜만에 회사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하여 힘찬 건배와 함께 밤을 지샜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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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only did I reject Manager Heo’s personal requests, but after the Daerim dealership incident, his malicious retaliation against me intensified. Normally, an electronics sales representative would manage around four or five dealerships to ensure close support. However, the manager started to hand over troublesome dealerships one by one—the ones that had conflicts with other reps or held an unfavorable view of the company. Before I knew it, I was assigned to manage ten dealerships, each with poor sales records and frequent issues. Essentially, I was responsible for double the usual workload simply because my assigned dealerships had low sales performance.
Despite this, I didn’t complain. I tackled the scattered issues and visited each of the ten dealerships daily, often working late into the night. Many times, I would return to the office to find myself alone in an empty office space. Without even having dinner, I would finish processing all the orders from my field visits, entering them into the system before heading home. By the time I ate the meal my mother had prepared, it would often be around 10 p.m., and I couldn’t even remember the last time I caught the 9 p.m. news. I felt a heavy heart about my elderly mother staying up late every night to cook for me. Finally, I managed to persuade her to let me move into a small studio apartment in Hwajeong, just outside Seoul.
Gradually, however, my efforts began to bear fruit. Contrary to Manager Heo’s intention of overwhelming me with difficult tasks to push me out, the sales of these challenging dealerships began to improve. Most of these dealers were places the company had all but abandoned, typically buying stock directly from Yongsan Electronics Market. Their company purchase performance had been near rock bottom, so there was nowhere to go but up for these tough-minded, underperforming dealerships. In time, the dealership owners started to respond positively to my earnest daily visits, slowly transitioning from sourcing their products independently to placing more orders with me. Since their previous numbers were so low, any improvement showed clear results. And, after all, I was managing ten dealerships—far more than the average load.
In response, the manager transferred the now-stable Yeouido dealership to Jang, a senior rep, and instead assigned me to the infamous Malmi dealership, which had a notorious reputation and had been a sore point between Jang and the owner. The Malmi dealership was located near the Malmi intersection on Siheung Road. Just a few weeks prior, the owner had stormed into the company with a knife, upturned a desk, and threatened to kill everyone if pressured into accepting more stock.
Even Jang, a seasoned veteran, couldn’t handle the volatile Malmi dealership owner. Though the dealership generated significant sales, making it difficult for the company to dismiss them, no one was willing to step up to take over the account. Ultimately, it fell to me.
I stood about ten meters away from the dealership in an empty lot, pacing for nearly 20 minutes before finally mustering the courage to take my first steps toward it. “Hello!” I called out loudly, but it was as if I hadn’t spoken. The staff were all busy carrying boxes as a new shipment had arrived, and no one seemed to hear me. Standing there awkwardly, unsure of what to do, I took off my jacket and began carrying boxes along with them. There was a lot of stock to move, and by the end of it, I was drenched in sweat in the sweltering summer heat. In the process of hauling boxes, I exchanged glances and light conversations with the staff, gradually easing the initial awkwardness.
By the time we finished moving all the boxes, the dealership owner, Mr. Han, had yet to appear. However, through the operations manager, who had shared in the labor, I was able to learn a bit about the situation at the Malmi dealership and about Mr. Han himself. Finally, Mr. Han entered the office.
“Hello!” I stood up quickly, greeting him in a loud voice.
“Oh, you’re here?” he replied briefly, feigning indifference as he sank into a sofa and began flipping through a newspaper before reluctantly turning his gaze toward me.
“Sit here,” he said curtly, stirring the coffee a staff member had brought him. His stern expression suggested I was in for a challenging meeting. Though fear surged through me, I maintained my composure as I faced him and took a seat.
“You know…,” Mr. Han started, cutting himself off as if too upset to continue, closing his mouth as though dumbfounded. After a pause, he seemed to settle down and began speaking again in a low voice.
“I figured it was pointless to tell a rookie, so I wasn’t going to say anything. But listen, how is it that as soon as the rep changes, all this stock arrives in the morning without my even ordering it? Do you know how much came in today? I mean, don’t they give us any breathing room? Just when I think things are getting manageable, they dump more stock. Don’t they know I threatened to kill everyone with a knife if they kept pushing stock? And now they send more? Are you out of your mind?”
“Ah…um…” I stammered, unsure how to respond. Only now did I realize what the branch manager had meant when he had smirked at me earlier, saying, “It’s going to be a rough first day.”
“I doubt a new hire like you knows anything, but if the headquarters keeps acting this way, I’ll abandon this cursed dealership. When you return to the office, tell your manager that loud and clear, got it?” His voice grew even more agitated, and he downed the rest of his coffee before abruptly standing up and storming out, leaving me dumbfounded.
Upon leaving the dealership, I felt thoroughly defeated. It was now clear that the branch manager had arranged for excessive stock to be sent, putting me in a tight spot with this troublesome owner. Thus began my long ordeal with the Malmi dealership owner.
Shin shook off thoughts of Manager Heo from the past and finally confided in Chief Kang, sharing ideas he had been formulating to address key issues. Shin’s analysis struck at the heart of each situation, showing real promise for overcoming these challenges, and even Chief Kang seemed surprised.
“Wait, you had these ideas this whole time but did nothing? That’s practically dereliction of duty. If you’d brought this up sooner, maybe I wouldn’t have had to struggle so much.” Kang spoke with a mix of relief and regret.
“Actually, I’ve only just thought through a comprehensive solution. Until now, I wasn’t clear on the issues myself. I had to study marketing thoroughly and systematically reassess our company’s strategic weaknesses.”
“So, what’s your plan moving forward?”
“I need to gather evidence to support my proposal. From now on, I’ll start conducting independent research to prove my findings, without Manager Lee knowing. It’ll take time—I estimate about two months to complete the research and compile a final proposal by early January.”
“Can’t you speed it up a bit? If you’ve already got everything prepared, it would be better to get it included in this year’s business plan.”
Shin, however, remained firm. “Without objective support, it’ll get shot down by upper management. Power only goes so far, but logic based on facts—facts that even Executive Kim and Manager Lee can’t dispute—is key. A sloppy attempt will accomplish nothing. And besides, I can’t do this alone; you don’t have time to help either, do you?”
“Alright, I understand. Put together something impressive. I’ll support you all the way.”
“But don’t push me off a cliff—I’m not ready to go down just yet.” Shin laughed.
Time with his friend was always refreshing and filled with a sense of camaraderie. Shin knew that the time had come to awaken and make a change. Late into the night, he and Chief Kang toasted to the company’s future and their own, feeling more motivated than ever.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