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18. 수메르 문명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18. The Sumerian Civilization)

수메르 문명은 세계 4대 문명 중의 하나로 꼽히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꽃피었던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초승달 모양의 땅에 그보다 먼저 존재하였던 문명입니다. 쉽게 말해서 수메르 문명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뻗어 나왔습니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그리스로마 문명의 근원이 되었으므로, 결국 수메르 문명 덕분에 오늘의 서양 문명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17. 환국시대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17. The Era of Hwan-guk)

인류의 시원 국가인 환국은 삼성조 시대의 첫 머리로 조화신(造化神)의 신성이 구현된 때입니다. 환국의 신교의 삼신(조화. 교화. 치화) 사상이 인간 역사로 실현된 삼성조 시대는 환국, 배달, 고조선입니다. 환국은 조화신의 시대, 배달은 교화신의시대, 고조선은 치화신의 시대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대자연과 한마음 되어 천지의 조화신성 속에 살며 우주광명의 심법을 체득한 시대였습니다.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16. 환국에서 발원한 인류 문명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16. The Origin of Human Civilization from Hwan-guk)

인류가 지구상에 처음 나타난 것은 약 500만 년 전으로 추정이 됩니다. 최초의 인류로 추정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생존한 연대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인간다운 특징을 가진 최초의 존재로 50~60만 년 전에 생존했던 베이징인이나 자바인 등이 거론 되었습니다. 이들은 불과 도구를 사용하였고, 사냥을 하며, 사회를 이루어 서로 보살피며 살았습니다. 초기에는 이들을 호모(사람)이라는 속명으로 부르지 않고 단지 베이징인, 자바인으로 부르다가 지금은 유럽의 하이델베르크인과 함께 ‘호모 에렉투스(직립인)’라 부릅니다. 생존 연대도 150만 년 전까지 올려 잡고 있습니다.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15. 위서론 문제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15. The Arguments of Pseudohistory Theorists and Responses from Scholars)

위서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이덕일은 “그들 비판의 상당 부분이 내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 끝에 나온 ‘본질적인 부분’이라기보다는 ‘자구字句의 사용례’에 매달리는 지엽적인 부분에 얽매인 감이 없지 않다”라고 하면서 “굳이 전해진 책을 조작할 필요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그 숱한 인명, 지명, 연대, 사건을 조작할 수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세기적인 대천재이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일축하였습니다. (이덕일-[우리역사의 수수께끼] 48,55쪽)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14. 진정한 조선, 단군조선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14. The True Joseon: Dangun Joseon)

한국인의 진정한 조선은 국조인 단군왕검이 고유문화인 神敎의 가르침을 받들어서 세운 단군조선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작 단군조선의 실체를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13.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역사왜곡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13. Gija Joseon & Wiman Joseon Claim)

중국이 주장하는 조선, 기자조선

중국인들은 漢代 이래 기자조선을 역사적 사실로 믿어 왔습니다. 이러한 중국의 주장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1973년, 요령성 객좌현에서 기후箕侯라는 명문이 새겨진 청동 솥이 발굴 되었습니다. 이 유물은 기자가 살던 상말.주초에 해당하는 BCE1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12. 환단고기를 대중화시킨 이유립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12. Yi Yu-rip, Who Popularized Hwandangogi)

압록강에 처참하게 버려진 계연수의 토막 난 시신이 수습될 때, 그 광경을 현장에서 지켜보며 말없이 눈물을 흘리던 14세 소년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암당 이유립이었습니다.

이유립은 계연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역사 속에 묻혀 버릴 뻔했던 [환단고기]를 굳게 지켜 오늘의 한국 사회에 널리 대중화시킨 인물입니다. 이암과 이맥의 후손인 이유립은 평안도 삭주의 유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이관집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11. 환단고기를 편찬한 계연수와 이기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11. Gae Yeon-su, Compiler of Hwandangogi, and Yi Gi)

천 년의 세월에 걸쳐 쓰인 다섯 권의 사서를 한 권의 [환단고기]로 묶은 인물은 바로 1864년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난 운초 계연수입니다. 지인들로부터 구한 책을 한 권으로 엮어 편찬한 것입니다.

안함로의 [삼성기]는 운초의 집안에 전해 오던 것이었고, 원동중의 [삼성기]는 인근의 태천에 살던 백관묵에게서 구하였습니다. [단국세기]또한 백관묵의 소장본이고, [북부여기]는 삭주 뱃골 사람 이형식의 소장본이었습니다. [태백일사]는 운초의 스승인 해학 이기의 집안에 전해 오던 것이었습니다.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10. 태백일사를 지은 이맥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10. Yi Maek, the Author of Taebaek Ilsa)

조선 초기의 문신인 이맥은 행촌 이암의 현손으로 자는 정부, 호는 일십당입니다. 1474년(성종 5)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학문에만 힘쓰다가 1498년(연산군 4) 44세 때, 비로서 식년시에 급제하였습니다. 그 후 성균관 전적 등 여러 관직을 거쳐 사헌부 장령에 이르렀는데, 장숙용(장녹수)이 연산군의 총애를 믿고 분에 넘치게 재물을 탐하고 사치를 일삼자 여러 차례 탄핵 상소를 올리다가 50세(1504)에 충청도 괴산에 유배 되었습니다.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9. 북부여기를 지은 범장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9. Beom Jang, the Author of Book of Northern Buyeo)

범장은 조정에 출사하기 34년 전 젊은 시절(1335)에 이암, 이명과 함께 소전거사로부터 고서를 전수 받았습니다. 그때 세 사람은 국호만 살아 있을 뿐 주권을 상실한 고려의 현실을 통탄하며 반드시 한민족사를 되찾을 것을 굳게 결의하였습니다. 이 3인의 결의사건 덕분에 한국사 회복의 길에 서광이 비치게 된 것입니다. 이후 범장이 쓴 책이 바로 [북부여기]와 [가섭원부여기]입니다. 출사하기 전에 썼는지, 고려가 망한 후에 낙향하여 썼는지 그 시기는 불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