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싸움 64. 모델 선발 대회 (4) [Battle of Perception 64. Model Selection Competition (4)]

이미 여러 잔이 오가는 동안 눈이 반쯤 감긴 팀원들을 보고 미용연구팀 정대리가 최근에 새로 입사한 영업지원팀의 김우진을 데리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니, 이게 뭡니까? 우리들은 뼈빠지게 일하는 동안, 팔자 좋게 술이나 마시고 있어도 되는 거에요?”  그녀는 항상 부럽다는 표현을 핀잔 섞인 투덜거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입버릇처럼 된지 오래였다.   “우리도 논 거 아냐. 지금까지 얼마나 열띤 회의를 했는데? 아무튼 우리가 낸 지금까지의 아이디어를 설명할 테니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의견을 좀 더 줘봐.” “어~? 우진이도 함께 왔구나. 어서 와~. 너도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함께 오라고 불렀다. 그런데 윤희씨, 성준이는 안 온데?”       신팀장은 박성준에게 전화했던 조윤희를 바라 보았지만, 조윤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가로 저을 뿐이었다. 조윤희 혼자 마케팅에 합류한 이후 신팀장과 박성준은 더욱 거리가 멀어져서, 신팀장이 아무리 전화를 해도 전화를 받으려고 하질 않았다. 신팀장은 박성준에 대해서 항상 마음이 마냥 무겁기만 하였다.        이때 정대리가 항의하듯 말했다.  “너무 부려 먹으려고만 하지 말고, 우리도 일단 맥주 한잔부터 합시다.”  신팀장은 얼른 맥주를 시켜 다 같이 한 잔을 하였다. 그러다 뭔가 주제를 토의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이 띄엄띄엄 한 명씩 합류하는 바람에 이내 여러 번의 건배만 오가게 되었을 뿐, 도대체 진도가 나가지 않고 미팅은 점차 먹자판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시간이 자꾸 갈수록 신팀장은 점점 더 취해 가는 것만큼이나 더욱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순간 기회를 낚아 챈 그는 얼른 말하고 싶은 주제를 꺼내 방향을 전환하고는, 순간을 놓칠 새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그 동안의 내용을 설명해줬다. 한 동안 설왕설래가 오가며 서로들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시간은 하염없이 지나기만 했고, 술만 더 마시게 되는 회식 분위기는 점점 더 건질 것이 없는 것만 같아, 신팀장은 괜히 다른 이들도 불렀나 후회스럽기까지도 했다. 그러다 한 순간 이미 혀가 꼬부라진 정대리가 술잔을 높이 들며 내뱉듯이 말했다.        “까지 것 다해버려~, 모델도 뽑고, 이벤트도 하고, 광고도 하고, 기사 만들어서 신문에도 내고…. 다해 버리면 될 거 아니에요?”  “정대리, 누군들 모르겠어. 예산이 한정되어 있으니 다 할 수가 없잖아. 아예 정대리 같이 이쁜 일반 사람을 모델로 뽑는다면 모를까?”  정대리의 말에 신팀장은 답답하다는 듯이 대답을 하였다. 그 순간 그의 머리에 뭔가 한 줄기 빛이 스치는 것 같았다.  “어? 이것 봐라?”         신팀장이 뭔지 모를 아이디어의 실체를 찾아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김우진이 말했다.  “우리 일반인을 대상으로 모델 선발 대회를 하면 어떨까요?”  순간 모든 사람들의 눈이 영업지원팀의 한 신입사원에게 꽂혔다.       김우진은 대학에서 불문과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MBA를 전공한 석사출신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곱슬머리를 길게 휘날리는 그는 제법 옷도 세련되게 입고 자칭 파리지앙이라 스스로를 칭하고 다니었지만, 남들 보기에는 그저 키 작고 평범한 전형적인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생긴 것과는 달리 판촉 담당자로서 지금까지 기존의 틀과는 다른 참신한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게 마음에 들어, 신팀장도 함께 마케팅에서 일하고 싶어 몹시 탐을 내는 직원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그는 김우진을 일부러 찾아 이리로 오게 한 것이었다.        “우리 타겟이 직장여성이니까, 직장인 모델 선발대회가 맞겠네요.”– 계 속 – —————- As multiple rounds of drinks were passed around, some team members’ eyes were already half-closed. At that moment, Jeong Daeri from the Beauty Research Team brought along Kim Woo-jin, a new member of the Sales Support Team, and sat down, saying, “What is this? While we’re working our bones off, you guys are … Read more

인식의 싸움 63. 모델 선발 대회 (3) [Battle of Perception 63. Model Selection Competition (3)]

“민이사님, 도저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사무실에서는 여기저기에서 끊임없이 전화도 많이 오고 사람들도 쉼 없이 찾아와서, 도저히 팀원들이랑 차분히 미팅하기도 힘듭니다. 저희 팀에게 반나절의 자유를 주셨으면 합니다.”       파리에서 돌아온 지 이주일이 지났지만, 신팀장은 아직도 어떻게 해야 제품도 나오기 전에 미리 브랜드숍을 하겠다는 점장들을 확보할 수 있을지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스러웠다. 뭐 좀 일하다 보면 뚝딱 하루가 그냥 지나가는 것이 왜 이리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지, 그는 급기야 초조해지기 까지 했다. 그래서 그는 큰 마음을 먹고 민이사를 찾아갔다.       “자유라니? 무슨 말인가?”  “지금부터 팀원들을 데리고 사무실을 떠나 휴대폰도 꺼놓고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으며 자유로운 마음으로 미팅을 하고 오겠습니다.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밤을 새워서라도 하겠습니다. 장소도 묻지 말아주세요. 내일 아침에는 정상 출근하겠습니다.”  “다른 팀들도 있는데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네! 그렇지 않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또 이렇게 일주일을 더 보낼 수는 없습니다.”  민이사는 내심 ‘요놈 봐라’ 하며, 대리팀장이 확실히 당돌하다고 생각 하다가도 이렇게 하는 것이 크리에티브에 좋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결국 허락을 해주었다.  “알겠네. 다른 팀에 티 나지 않게 한 명씩 슬금슬금 빠져 나가게. 단 내일 아침 꼭 기대한 성과가 있길 바라겠네.”       점심 식사 후 바로 벌건 대낮에 나온 M&C팀 일행은 마치 처음 와본 익숙하지 않은 길에 나온 사람들처럼 막막한 것이 막상 갈 곳이 없었다. 회사 뒷 골목에 이리 환한 시간에 나온 것도 참으로 오랜만의 일인지라, 마치 외딴 곳에 내버려진 아이들마냥 이곳이 무척 낯설기만 보였다. 야외로 나가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고, 주변 커피숍은 너무 혼잡했다. 신팀장은 할 수 없이 회사 뒤 골목의 단골 호프집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5시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곳이었지만, 다행히 호프집 주인이 안에 있어 문을 열어주었다.        “사장님, 죄송하지만 지금 좀 들어가도 될까요?”  “아직 영업준비가 안되었는데…?”  “아~! 괜찮습니다. 우리 좀 조용히 회의하고 싶어서 그러니 방해하지 않을게요. 그냥 호프 500cc 세 개랑 오징어 땅콩 하나만 주세요.”  호프집 주인은 대낮부터 웬 홍두깨 같은 일인가 하며 의아해 하였지만, 워낙 신입 때부터 단골 손님인지라 차마 마다하지 못하고 일행을 안으로 들였다.         불 꺼진 어두컴컴한 호프집에 어느 정도 눈이 익숙해지자, 신팀장은 가볍게 맥주 한 모금으로 입가심을 하며 말을 꺼냈다.  “대낮부터 웬 술타령이냐 하겠지만, 난 대학시절에도 도서관에서 공부가 잘 안되면 혼자 내려와서 맥주 석 잔 정도 마시고 나야, 머리가 빨리 돌아 가서 집중력도 더 좋아지고 공부도 더 잘 되더라고.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일단 우린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도록 회사에서 떠난 게 중요한 거야. 지금부터 휴대폰도 다들 끄고, 평소와 다른 일탈에 대한 자유로움을 느껴봐. 그리고 나서 찬찬히 문제를 해결해 나가 보자.”          일행은 맥주 500cc를 한 잔 다 비우면서 블로냐와 파리에 있었던 일을 비롯하여, 그간 있었던 자질구레한 얘기를 나누었다가 점차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 이제부터 우리만의 브레인 스토밍(Brain Storming)을 하는 거야. 이미 TFT를 통해 하는 것 봤으니 다들 알겠지만, 이건 누가 옳다 나쁘다를 떠나서 많은 아이디어를 내는 게 중요해. 한마디로 다다익선이지. 어떻게 우리는 M&C 브랜드숍을 확보하고, 브랜드를 론칭하기 전까지 그들을 기다리게 할 수 있을까?”      대낮부터 500cc 맥주 잔이 여러 번 오가는 동안 세 사람은 티져 광고, 이벤트, 장려금, 유명 톱모델, 진열 제품 지원, 판촉물을 미리 나누어주자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허심탄회하게 쏟아냈지만, 특별히 확 구미를 당기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덧 저녁이 되고 퇴근 시간이 되자 신팀장은 몇몇 TFT멤버들을 불러 아이디어를 더욱 증폭시키고자 했다.– 계 속 – ————- “Director Min, I can’t seem to come up with any ideas. In the office, there are constant phone calls and people coming in and out, making it impossible for my team to have a focused meeting. I’d like to ask you to give us half a day of freedom.” Two weeks had passed … Read more

인식의 싸움 62. 모델 선발 대회 (2) [Battle of Perception 62. Model Selection Competition (2)]

오후가 되어 어느 정도 숙취가 가신 신팀장은 다시 예전의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에게 제품의 콘셉트부터 최종 디자인까지 두 시간에 걸쳐 설명을 마치자 슬쩍 영업 쪽에 화두를 던졌다.      “이 사업의 성공여부는 뭐니뭐니 해도 새롭게 만들어지는 브랜드숍을 빠른 시일 내에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품이 출시되고 1호점이 오픈하면 사업설명회를 통해 바로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로 쫙 깔아 나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미리미리 우수한 화장품전문점들 중에서 프랜차이즈 후보점들을 리스트하고, 우리와 거래할 점주들과 사전협의를 해야겠죠.”     “그런데 제품도 없이 디자인 사진 몇 장만 가지고 어떻게 점주들과 상담을 하죠?” 부산지역 문지점장이 질문하였다. 신팀장도 이것이 가장 큰 풀리지 않는 고민인지라 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았다.        “맞습니다. 어려운 일이죠. 그러니 여러분들 같은 베테랑들을 벌써부터 미리 뽑은 것 아니겠습니까? 마케팅에서도 좋은 안을 준비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또한 M&C 브랜드숍에서는 철저하게 가격할인을 하지 않는 정가제를 실시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요즘처럼 화장품 가격이 무너져 화장품전문점들이 수익을 보지 못하는 시점에서 M&C 브랜드숍을 모집하는데 가장 큰 장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프랑스 유명 브랜드에 소비자가도 다른 경쟁 브랜드숍들보다 높은 편이라서, 매장에서의 하루 실판매도 높고 부가가치도 크리라 보입니다.”         “그건 맞아요. 이미 중대형 화장품전문점들도 브랜드숍이나 기업이 직접 운영하는 대형 체인점들 때문에 갈 곳을 잃고 있으며, 브랜드숍들의 저가공세에 많은 전문점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매장을 전환하거나 문을 닫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저가 브랜드숍을 운영하는 점주들은 수량적으로 더 많이 팔려 바쁘긴 무지 바쁜데, 과거에 비해 수익률은 떨어진다며 무척 불만이라 하더군요. 분명히 그 중에 건실한 전문점이나 저가 브랜드숍에 불만있는 점주들을 잘 포섭하면 승산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브랜드숍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송대리가 신팀장을 거들어 주었다.        “그래도 뭐 보여줄 것이 있어야 하지…. 아무리 회사 믿고 나를 믿고 따라와라 해도 말이야~.” 문지점장이 또 다시 불만을 토로하였다.“그리고 가격이 더 높다는 것은 어쩌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 아닙니까? 전국의 수많은 전문점에선 할인판매를 하고 있고, 브랜드숍에선 저가 공세를 하고 있는데, 우리만 독야청청 중고가에 할인도 않하다가 소비자가 비싸다고 외면하면 어떻게 하나요?” 대전의 김과장도 불편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아, 그걸 제가 말씀 안 드렸군요. M&C는 처음부터 우후죽순처럼 아무에게나 매장을 허락하지않을 것입니다. 철저한 선택과 집중을 할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파레토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죠? 80/20의 법칙이라고도 부르는데, 매출적으로 보면 20%의 주력제품이 매출의 80%를 차지하고, 20%의 유명 영화배우가 80%의 영화 흥행실적을 올리고 있으며, 20%의 부자가 80%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화장품 시장도 상위 중대형 전문점의 매출이 전체의 70~8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단 전국에서도 대도시 주요상권에서 판매력이 우수한 중대형 전문점을 거점으로 해서 100개 매장만을 선별하여 우선적으로 브랜드숍으로 전환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매장 수도 많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영업2부는 소수의 매장을 대상으로 철저히 브랜드 이미지와 가격질서를 유지, 관리하며 거래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영업하기도 더 수월할 것입니다.”         이내 장내가 술렁거리며 사람들은 서로들 이렇다 저렇다 하며 오랜 시간 동안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뜻을 품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자신이 없어하는 표정으로 바뀌는 것을 신팀장은 놓치지 않았다. “자자~, 여러분~! 잠시만유~!” 서울 강북 박지점장이 특유의 넉살스러운 충청도 사투리로 말을 꺼내며 장내를 정리하였다.  “열띤 논쟁에 시간도 많이 지나버렸고, 난 벌써 배가 고픈데 말이여~, 오늘은 그만들 하시고, 우리 신팀장 한번 믿고 좋은 방안을 기다려 보는 걸로 해보면 어떨까유~. 내 최상무님께 가서 법인카드 얻어 올 테니 우리 다같이 쐬주나 한잔 합시다 그려~”         시간은 벌써 5시가 넘어 가는 상황이었다. 모두들 동의하며 회의실을 빠져 나가는 중에 박지점장이 신팀장에게 다가와 말했다.  “워쪄~, 오늘 아침에 보니 술 냄새가 장난이 아니던데…. 그래도 함께 가야지~? 중요한 사람들인데 말이여~.”   “그러죠. 뭐~, 이미 술 다 깼습니다. 언제 제가 술자리 마다한 적 있나요?”   “그려~. 내 이래서 신팀장이 좋다니까 말이여~.”      박지점장과 헤어지고 자리로 돌아오는 신팀장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제품도 나와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이 무슨 수로 후보자들과 거래를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전문점주들이 다른 회사의 브랜드숍으로 전환하지 않고 우리회사를 믿고 기다려 줄 수 있는 특별한 뭔가가 절실하기만 했다.  ‘휴~, 오늘도 또 술이구나. 또 얼마나 달려야 할지….’   오늘 하루가 이렇게 또 저물어가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 하나로 그는 오늘도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었다.– 계  속 – ———— Afternoon arrived, and Team Leader Shin had shaken off most of his hangover, returning to his usual self. He finished explaining the product’s concept and final design to the people gathered in the meeting room, taking two full hours. Then, he casually tossed a question to the sales team. “The success of … Read more

인식의 싸움 61. 모델 선발 대회 (1) [Battle of Perception 61. Model Selection Competition (1)]

총 300여 가지의 품목을 선정하고 개발 방향을 결정한 TFT는 각자의 자리에서 여념없이 개발에 몰두하며 일주일에 한번씩 진행사항들을 공유했다. 기초화장품은 크게 중저가대, 중고가대, 그리고 프레미엄 고가로 나뉘었다. 중저가대의 제품은 거래처 프리몰드를 활용하여 보편적인 디자인에 다양한 천연성분에 맞게 그래픽 디자인을 입힌 피부진정 및 보습라인을 구성하였고, 고가대는 프랑스와 인접한 알프스의 천연 허브 피토 테라피를 활용한 고기능성 라인으로 포진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중고가대의 M&C라인인데, 간판 브랜드에 맞게 기초, 색조, 바디, 향수 등의 화장품의 전 라인을 형성하는 파리 풍의 패션 지향적이고 감각적인 품목이 라인업 되었다. 특히 색조제품의 경우는 자칫 앞으로 남고 뒤로 까진다는 말처럼 부진재고에 대한 위험이 크기 때문에, 다양한 품목과 색상의 결정에 신팀장은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마케팅, 디자인, 포장개발부, 구매부, 연구소에서 병렬로 연결되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고성능 컴퓨터의 네트워크와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의 핵심에 서있는 사람이 바로 신팀장이었다.    출장을 다녀온 후 모처럼 가진 TFT를 마치고, 삼겹살에 소주로 가볍게 시작하여 치맥으로 2차를 가진 후, 3차로 노래방에서 고성방가를 하며 밤늦도록 달렸던 신팀장은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지끈거리는 머리를 진한 블랙커피로 달래보려 애썼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는 몸을 의자에 깊숙이 파묻고 머리를 뒤로 젖힌 채 몸을 칸막이 뒤로 숨기며 빨리 시간이 지나 숙취가 해소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휴대폰 벨이 울렸다. 신팀장은 꿈에서 깨어난 듯 전화를 받으며 몸을 곧추 세워 앉았다.  “신팀장, 잠시 내방으로 오게나, 소개해줄 사람들이 있네.”  TFT팀과 매주 회의를 하며, 개발업무에 소비자 리써치에 정신없이 일을 진행하느라 그 동안 찾아 뵙지 못했던 최상무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은 신팀장은 급히 2층으로 향했다.  신팀장이 방문을 들어섰을 때 그 곳에는 세 명의 낯선 이들과 강북지점 박과장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신팀장을 환하게 맞이하는 박과장과 서먹한 듯이 인사하는 세 명의 사람들 속에서 신팀장은 과거 입사 후 나이가 같아 입사동기처럼 지냈으나, 2년 전에 브랜드숍을 하는 다른 회사로 떠났던 송대리도 발견했다.  “신팀장 어서 오게. 요즘 많이 바쁘지?”최상무는 밝은 모습으로 어리둥절하는 신팀장을 직접 자리로 안내하며 말을 이었다.    “이 네 명의 사람들이 앞으로 신팀장과 함께 영업2부에서 동고동락할 지점장과 영업소장들이네. 여기 문지점장은 앞으로 부산 지역을 맡을 것이고, 김과장은 대전, 그리고 이미 잘 알고 있는 송대리는 서울 강남 소장이며, 현재 영업1부 강북지점의 박과장은 영업2부 강북을 맡을 것이네. 아직 광주와 대구 쪽은 정해지지 않았는데, 그 쪽도 영업1부에서 우수한 인재를 등용하여 브랜드숍 영업을 하기 위해 별도로 분리된 영업2부를 맡길 것이라네.”   최상무는 신팀장의 소개를 마치자, 고개를 돌려 영업소장들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신팀장은 내가 여러분께 여러 번 얘기한 바처럼, 영업지원부에 있다가 지금은 마케팅 팀장으로 수직 상승한 우리회사의 기대주니까, 영업이니 마케팅이니 하지 말고 한 가족이라 생각하며 서로 협조해서 일을 해나가길 바라네.”   신팀장은 모두에게 일일이 환영의 악수를 나누면서 통성명을 하며, 내심 그 동안 최상무께서 영업2부 조직의 구성을 위해 미리 준비해 온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 제품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영업 지점장 및 소장급을 뽑아놨는데, 입에서 술 냄새 푹푹 풍기며 이들에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한 그는, 왠지 평소 그답지 않게 미적미적 서먹하기만 했다.   “자~! 지금은 우리 함께 차 한잔 하며 인사나 하고, 점심 먹고 나서 신팀장이 바쁘겠지만 사업개요부터 앞으로의 계획 등을 이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어떤가?” 최상무의 물음에 신팀장은 해방되었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대답하였다.  “네, 상무님. 오후 2시부터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여러분들 오후에 뵙겠습니다.”  신팀장은 기회를 잡아 빠져 나오듯이 최상무의 방에서 나와 자리로 돌아가 털썩 주저 앉았다. 어제 마신 숙취에 천장이 빙빙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 계속 – ————- The TFT, having selected and determined the development direction for approximately 300 product items, diligently focused on development in their respective roles while sharing progress in weekly meetings. Basic skincare products were categorized into mid-to-low, mid-to-high, and premium high-end ranges. The mid-to-low range … Read more

인식의 싸움 60. 해외출장 (5) 파리의 밤. [Battle of Perception 60. Business Trip Abroad (5) A Night in Paris]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순간 살짝 몸을 숙여 손으로 얼굴을 고이고 신팀장을 그윽히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은은한 촛불에 더욱 발그스레 비쳐지자, 신팀장은 그녀가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의 심장이 요동치며 가슴이 답답한 것만 같아 그는 와인 한잔을 한번에 급히 들이켰다. 분위기에 취하고 와인에 취하고 아름다운 파리 여성에 취하는 밤이었다.      그의 마음을 눈치라도 챘는지, 갑자기 미셸리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며 말을 꺼냈다.  “참? 일행들이 있는데…, 벌써 11시가 넘었네요. 이만 호텔로 들어가 봐야 하지 않나요?”  “네? 아…. 그렇죠. 하지만 그쪽 팀도 오늘 시장조사 끝내고 파리 야경투어를 하고 12시 다되어서 들어 온다고 했으니, 아직은 괜찮을 겁니다.”   그는 아직 그녀와 헤어지는 게 못내 아쉬워, 자리를 떠나겠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른 일행들은 여행도 하고 참 좋은 것 같아요. 신팀장은 제대로 여행도 못하고 이런 구석진 곳에서 나와 같이 있어서 어쩌죠?”  “무슨 소리에요? 제 말을 들으면 아마도 그들이 절 더 부러워 할 걸요? 파리 구경이야 나중에 또 해도, 이렇게 한밤의 파리 카페 분위기를 미셸과 함께가 아니면 어떻게 누릴 수 있겠어요?”        미셸리는 와인을 한 모금 머금으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는 모습이 신팀장의 말이 과연 그런가 하는 듯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문득 촛불이 희미하게 스며든 그녀의 얼굴은 몽롱한 환상의 세계로 신팀장을 인도하는 듯하였고, 평상시와 달리 차분한 목소리가 촉촉하게 베어 나오는 그녀의 붉은 입술은 더욱 매혹적으로만 보였다.       그 때였다. 신팀장은 갑자기 앞자리로 고개를 내밀며 그녀에게 짧은 입맞춤을 하였다. 순간 돌발적인 입맞춤에 미셸리보다도 당황한 사람은 오히려 신팀장 자신이었다. 단 하루 만에 이렇게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빼앗겨 보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신팀장은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어쩔줄 모르고 있다가, 침묵을 깨고 주섬주섬 말을 꺼냈다.  “아… 저… 미셸,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순간 미셸리가 다가와 그에게 깊은 프렌치 키스를 하였다. 신팀장의 심장은 쿵쾅쿵쾅 너무도 뛰어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자신의 심장 소리와 감미로운 그녀의 입술만이 느껴졌다. 그녀의 살 내음과 함께 방금 머금은 와인 향이 그녀의 숨결을 타고 그의 후각을 자극하는 순간, 그는 어떤 격정이 가슴 속으로 치밀어 오르 뜨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무한의 시간인 것만 같았던 짙은 키스는 찰나처럼 너무도 허무하게 지나가 버렸다. 여전히 요동치는 가슴을 달래며,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원래 제 자리로 돌아 온 그는, 한 순간 쑥스러움에 그녀를 바라보지 못하겠는지 마지막 남은 한 잔의 와인을 마시고 나서야 그녀를 보았다. 반면에 미셸리는 턱에 얼굴을 괴고 그를 더욱 그윽하게 바라보며 쑥스러워 하는 그가 더욱 귀엽기만 하다는 듯이 입가에 한껏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오늘은 마법 같은 날인가 봐요. 나도 미안해요. 이러면 서로 비겼으니 우리 모두 없었던 일로 해요. 이제 그만 가봐야 할 듯하니 우리 그만 나가요. 내가 택시 잡아줄게요.”  미셸리는 거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그녀도 당황하기는 매 마찬가지였다. 한국인이 아닌 프랑스인과 결혼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던 자신이 갑자기 한국 남성에게 이렇게까지 마음이 끌릴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나이도 어리고 평상 시는 마냥 천진스럽다 못해 철부지 같기만 한 그가 일할 때는 확고한 자신감과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그가 자신보다 한참 위의 연상이자 멋진 사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지금처럼 일상에서 보면, 어린 아이 같은 귀여움에 마냥 그를 품에 안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일단 지금은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팀장은 갑작스런 그녀의 돌변에 얼떨떨하였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자석에 끌리듯 그녀를 따라 일어나서 그녀가 잡아주는 택시에 올라탔다. 미셸은 운전수에게 호텔까지 태워다 달라고 말하며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고는 신팀장 입술에 손을 대며 말했다. “오흐부와(Au revoir)~!”      호텔로 가는 길, 아직도 그녀의 향취와 입술의 흔적이 남아있는 듯, 신팀장은 눈을 감으며 꿈 속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신팀장은 호텔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현실로 돌아왔다. 룸메이트인 김대리는 벌써 들어와서 혼자 즐겁게 여행한 것이 오히려 약간 미안했는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미팅이 잘되었는지 등을 물어봤지만, 그는 건성으로 응대하며 그의 말을 흘려 넘겼다.  아직도 와인의 향취와 미셸리의 달콤한 입술과 그녀의 살 내음과 함께 감각 깊이 파고드는 푸레시 플로럴 향이 온 몸에 살아 감싸주는 것만 같았다. 파리의 마지막 밤은 짙고 몽환적인 마력과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 계 속 – ————- The evening had already set in, and the group moved to a nearby restaurant to enjoy a French meal accompanied by wine. They relished the escargot covered in cheese sauce and the tender steak served with foie gras, which they had never tried before, as the night in Paris deepened. … Read more

인식의 싸움 59. 해외출장 (4) 파리에서 데이트). [Battle of Perception 59. Business Trip Abroad (4) A Date in Paris]

어느 새 저녁 시간이 되어 일행은 근처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겨 와인과 함께 프랑스식 식사를 하였다. 치즈 소스에 덮인 달팽이요리와, 난생 처음 먹어 보는 부드러운 프와그라가 곁들어진 스테이크 요리를 매우 맛있게 먹으며 파리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특히 보르도 메독지방의 다소 드라이 하지만 깔끔한 풍취의 와인은 비교적 느끼한 프랑스 음식들을 상큼하게 돋구어줘 신팀장은 하나도 남김없이 음식을 깨끗이 비우고 말았다.      마담 소피와 헤어지고 미셸리는 신팀장과 민이사를 호텔에 내려주며 인사와 함께 피곤했던 하루를 마무리하듯 바로 뒤돌아 섰다. 신팀장은 호텔 회전문으로 들어서는 민이사를 바라보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미셸리를 바라보기를 반복하며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미셸리를 부르며 그녀를 따라 뛰어갔다.  “미셸리 사장님~! 잠시만요~!”  미셸리는 막 출발하려던 그녀의 BMW를 멈추고 고개를 내밀며 의아하다는 듯이 신팀장을 바라 보았다. 신팀장은 무작정 차문을 열고 그녀의 옆 자리에 올랐다.       “웬 일이시죠?”   미셸리의 대답에 신팀장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사장님, 제가 오늘 파리에 처음 왔는데 하루 종일 회의만 하고, 그 유명한 파리의 한 구석조차 보지를 못했습니다. 피곤하시겠지만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에펠탑이라도 한번 구경시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미셸리는 난처하다는 듯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다가, 기사에게 프랑스어로 뭐라 말하더니 기사를 돌려 보내고 특유의 낭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리세요. 그럼 내가 운전하며 파리 야경 투어를 해줄 테니, 함께 앞자리로 가시죠. 뒤보다는 앞이 더 보기 좋을거에요.”  “네? 정말이요? 진짜 감사합니다~!”          신팀장은 미셸리의 세심한 배려에 깊이 감사하며 자리에서 얼른 내려 BMW의 앞자리로 옮겨 탔다. 미셸리의 옆 좌석에서 BMW를 탄 것만해도 황홀한 지경이었는데, 신팀장의 눈 앞으로 지나가는 파리의 아름다운 야경은 그를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것만 같았다. 신팀장과 미셸리는 에펠탑에서 내려 잠시 거닐며 수 많은 조명으로 잔뜩 장식한 아름다운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개선문을 거쳐 샹제리제 거리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잘 가는 BAR가 있는데 가서 와인 할까요?” 미셸리가 말했다.  “술 드시면 운전 괜찮으시겠어요?”  신팀장의 대답에 미셸리는 집이 바로 근처라 걸어가면 된다며 아는 BAR로 그를 안내하였다.     BAR에는 파리의 젊은 남녀로 왁자지껄했는데, 남자고 여자고 다들 담배를 피워대는 바람에 공기는 뿌옇고 자욱했지만 파리 특유의 이국적인 느낌에 매료된 신팀장은 오히려 이 조차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미셸리가 들어오자 이 곳의 몇 명이 그녀를 알아보고 프랑스 특유의 인사 방식으로 양 볼에 뽀뽀를 하며 인사를 하더니, 그 자리에 서서 간단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신팀장은 우두커니 서서 프랑스어로 프랑스인과 대화를 나누는 그녀가 한국인이 아니라 푸른 눈의 프랑스인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점점 더 그녀가 경외스럽게 느껴졌다.         얘기를 마친 미셸리는 신팀장에게 미안하다는 한마디와 함께 구석진 자리로 그를 능숙하게 인도하여, 자리를 잡고 앉아 와인과 간단한 치즈와 크래커를 시켰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이렇게 까지 신경 안 써주셔도 되는데…”  “음…. 근데, 신팀장님! 그 사장님 소리 좀 안 하면 안 되나요? 내가 듣기가 좀 거북하네요?”  “그래도 사장님 아니십니까? 어떻게…, 그렇다고 누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요…. 하하~”   신팀장의 농담에 미셸리도 살짝 소리를 내어 웃었다.    “호호~ 그 냥 우리 한 살 차이뿐이 안되니 편하게 이름 불러줘요. 미셸이라고….”  “아…. 네~! 미셸~~ 하하~”         신팀장은 처음엔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약간 어색하기만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 와인을 몇 잔 마시면서 점차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미셸이 어린 시절 외교관인 아빠를 따라 아프리카, 미국, 프랑스 등을 이사 다니며 살게 된 얘기에서 시작해서, 한국 남자는 너무 무뚝뚝하고 여자를 위할 줄 모른다며 프랑스 남자와 결혼할 것이라는 등 개인적인 얘기도 듣게 됐다.      어느 새 한 병을 다 비우자 미셸은 다른 종류의 와인으로 한 병을 더 주문했다. 앞에 마신 것은 쉬라즈 종류로써 맛이 부드럽고 그윽했던 반면, 이번에 주문한 것은 까베르네쇼비뇽 종류로써 바디가 매우 단단하고 강한 향이 입 전체를 자극하는 게, 소주에 단련된 신팀장에겐 더욱 입에 맞는 와인이었다.– 계 속 – —————- Before they knew it, evening had arrived, and the group moved to a nearby restaurant to enjoy a French meal accompanied by wine. They savored escargot covered in cheese sauce and a tender steak dish with foie gras, a delicacy they were tasting for the first time. As the night deepened in Paris, … Read more

인식의 싸움 58. 해외출장 (3) M&C 라이센싱 미팅 (병법36계 금적금왕). [Battle of Perception 58. Business Trip Abroad (3) M&C Licensing Meeting]

마담 소피는 신팀장이 가져온 디자인 목업(Mock-up)을 보고, 프랑스인 특유의 감성 풍부한 표정과 탄성으로 원더풀을 반복하며, 한국에서 제품이 출시되면 오히려 프랑스에서 수입을 하고 싶다는 말도 하였다. 이렇게 초반 좋은 분위기로 시작된 회의는 근 세 시간 동안, 향후 M&C 화장품의 전 세계 판권, 한국에서의 론칭 행사, 우수 대리점 사장들의 파리 여행지원, 그리고 파리 본사의 까다로운 COC(Code Of Conduct)의 완화 등 다양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COC란 글로벌 회사에서 전 세계 법인 및 라이센씨(Licensee)들에게 규정한 공통으로 지켜야 할 업무 규정으로써, 본사에서 브랜드와 디자인, 품질 등을 검사하고 통제하기 위한 까다로운 법규와 같은 것이다.     “자, 그럼 제가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겠습니다.” 미셸리가 회의를 마무리하며 한국어와 불어를 오가며 말을 꺼냈다.   “가장 민감한 문제였던 COC 완화 건은 전 세계 라이센씨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규정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촉박한 제품개발 일정과 론칭 스케쥴로, 모든 제품의 사양과 광고들을 일일이 컨펌 받고 진행하기 어려우니, 일단 한국 측에서 먼저 진행하고 사후에 모든 견본을 파리로 보내는 것에 대해 마담 소피께서 합의하였습니다.”       이 건이 신팀장 입장에서는 오늘 미팅을 하자고 한 가장 주된 이유였다. 이로써 그는 앞으로 매번 파리 본사 컨펌을 기다리지 않고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마담 소피의 배려에 깊이 감사를 하며, 꼭 가을 시즌에 맞춰 늦지 않게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론칭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병법36계에는 금적금왕(擒賊擒王)이란 전략이 나온다. 즉, 적을 사로잡으려면 우두머리부터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신팀장은 문득 과거 읽었던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전출새(前出塞)’라는 시가 생각났다.      활을 당기려면 강하게 당기고 [挽弓當挽强]화살을 쏘려면 멀리 쏘아야 한다 [用箭當用長]사람을 잡으려면 먼저 그 말을 쏘고 [射人先射馬] 적을 잡으려면 먼저 그 왕을 잡아라 [擒賊先擒王]      금적금왕(擒賊擒王)이란 말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당나라 현종 때 안록산이 난을 일으켜 그 부하 장군 윤자기(尹子琦)가 수양성을 공격하였다. 윤자기는 13만 대군을 이끌고 수양성을 포위했으나, 수양성에는 군사가 고작 7천에 불과했었다. 수양성의 장순(張巡)은 일단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버티었지만 군량마저 바닥나서 성은 곧 함락될 위기에 놓이고 말았다.        그러다 갑자기 장순은 “사람을 잡으려면 말을 먼저 쏘고, 적을 잡으려면 적의 두목부터 잡아라((射人先射馬, 擒賊先擒王)”는 말이 생각나서, 유일한 돌파구로 적장 윤자기를 먼저 제거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저 수많은 적 가운데 적장 윤자기를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장순은 부하들에게 마른풀로 화살을 만들도록 지시하여 사격하게 하였다. 당연히 적들은 가짜 화살에 맞아 쓰러지지 않았다. 이에 적군 중 한 명이 건초 화살을 집어 들고 윤자기에게 가서 무릎을 끓고 수양성에 화살이 떨어졌다고 보고하는 모습을 장순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는 숨겨두었던 명사수들이 일제히 진짜 화살을 윤자기에게 날렸고, 그 가운데 한 대가 윤자기의 왼쪽 눈에 꽂히고 말았다. 이렇게 장수가 부상당해 쓰러져 적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장순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총 출동하여 대승을 걷을 수가 있었다.         매번 디자인 하나, 문구 하나에 까다롭게 구는 M&C 본사의 담당자들은 도대체 대화가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원칙만 있었고, 현실적인 사정은 나 몰라라 하는 것이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항상 파리에 일일이 보고할 수가 없었던 신팀장은 파리에서 수장인 마담 소피를 직접 만나서 얼굴도 익힐 겸 그녀와 담판을 짓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금적금왕(擒賊擒王)의 계는 성공을 하였다. 확실히 책임과 권한이 있는 장수는 그 생각과 배포도 달랐다. 그는 이 기회에 마담 소피를 통해 리더의 품격을 배울 수도 있었으며, 이렇게 사람들과의 관계는 한번이라도 얼굴을 맞대고 직접 이야기를 나누어야 더욱 돈독해지는 것임을 새삼 느꼈다.– 계 속 – ————— Madame Sophie examined the design mock-ups brought by Team Leader Shin and repeatedly exclaimed “Wonderful” with the expressive enthusiasm characteristic of the French. She even mentioned that once the product launched in Korea, she would like to import it to France. With such a positive start, the meeting extended for nearly three … Read more

인식의 싸움 57. 해외출장 (2) 볼로냐 코스모프로프 ② [Battle of Perception 57. Business Trip Abroad (2) The Bologna Cosmoprof Fair ②]

다음 날 오전, 신팀장은 이태리 메이크업 전문 제조회사인 인터코스를 방문해 올 해의 세계 칼러 트렌드를 프레젠테이션 받고, 다양한 샘플을 보고 발라보면서 정대리, 남대리와 함께 주요 색상의 견본을 결정하였다. 이 견본을 토대로 첫 출시될 립스틱과 아이섀도우 등의 다양한 칼러가 준비될 것이다.         그리고 오후에 방문한 곳은 각종 에스테틱 전문 브랜드들의 전시관들이었다. 신팀장은 이곳에서 앞으로 나올 기초화장품의 아이디어와 콘셉트를 찾기 위해 각 부스를 돌아 다니며 제품을 둘러 보았다.          화장품에 대해 아직 전문성이 부족한 신팀장은 들고 다니기가 힘들 정도로 각종 카타로그를 무조건 열심히 모았다. 그는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여러 사람들이 검토하면, 이중에 뭐라도 하나 참신한 아이디어가 걸리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컸었다.      그러나 하루를 마감하는 정보 공유 미팅에서, 팔이 빠지도록 가져온 그의 수 많은 카타로그들은 중복되고 불필요한 것들로 분류되고 걸러져서 거의 반이나 버리고 돌아가야만 했다. 그는 갑자기 수북이 버려진 카타로그 뭉치들이 하루종일 메고 다녔던 어깨의 통증으로 느껴졌다. 그런 아쉬움과 함께 볼로냐 코스모프로프의 마지막 밤도 저물어갔다.        다음 날, 월요일에 있을 파리 M&C본사와의 미팅 약속 이전에, 일행들은 황금과도 같은 주말 자유시간을 맞아, 바티칸 시국과 로마, 피렌체 등을 개별적으로 관광하기로 하였다. 신팀장은 고대 로마의 화려한 신들의 시대에서부터 시작하여, 중세 카톨릭 성당을 보며 하느님에 대한 경이롭고 위대한 유산에 큰 감동을 느꼈지만, 오직 신에만 의존하던 인간들이 현실에 눈을 뜨며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찾아가는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을 보며, 결국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더욱 처절했던 아름다움의 의미를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지금 그가 회사에서 새로운 르네상스를 열기 위한 고통스런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생각에, 르네상스가 그에게 주는 아름다움은 단순히 문화적 테두리를 벗어나, 새 세상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이번 여행을 통해 신과 인간, 그리고 전통과 문명이 한 곳에서 어우러진 이태리의 문화에 한껏 매료된 그는 진정으로 이번 출장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화려한 로마보다는 가는 곳 거리거리가 모두 문화재인 피렌체에서, 개발이란 명목 하에 무너진 대한민국의 전통과 문화를 돌이켜 보며 진정한 아름다움은 바로 우리의 것이 아닌가 하는 영감을 받았다. 이때 그는 지금 비록 외국 브랜드를 라이센스한 상품을 판매하려고 하지만, 앞으로 진정 그가 해야 할 일은 아름다운 대한민국, 우리의 것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함께, 이를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강한 브랜드를 꼭 만들고 싶다는 마케터로서의 굳은 다짐을 마음 깊이 새겼다.          그렇게 꿈같던 주말이 흘러가서 일행들은 파리에 도착하였다. 파리에 도착하자 마자 민이사와 신팀장은 별도로 미셸리를 만났고, 다른 일행들은 파리 시내 화장품 매장에 대한 시장조사를 하기로 하였다. 낭만의 도시 파리에 와서 구경 한번 제대로 못하고 하루 종일 미팅만 해야 하는 신세에, 신팀장은 떠나는 다른 이들을 못내 아쉬워하며 그저 파리에 다시 돌아올 훗날만 기약하였다.             신팀장은 M&C 해외 라이선스 디렉터인 마담 소피를 지난 번 서울에서 인사만 하였을 뿐, 가까이 만나 이야기를 해보지는 못했었다. 그러다 지금 파리에서 그녀를 가까이 만나보니, 그때와는  그녀가 새삼스럽게 달라 보였다. 그녀는 비록 50대라 하여도 날씬하고 세련된 파리의 패션 회사 중역이라기 보다는, 의외로 약간 살이 있는 우리나라의 수더분한 아줌마와 같은 타입이었다. 반면 함께 미팅에 참석한 그녀의 부하직원들이 바로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아름다운 파리지엔느들이라 할 수 있었다.             신팀장과 민이사는 미셸리의 소개로 마담 소피와 그녀의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으로 미팅에 들어갔다. 미셸리는 미팅 내내 단순한 통역 수준이 아니라 마치 회사를 대변하는 사람인양 신팀장과 민이사의 의견을 자신있고 소신있게 이끌어 갔다. 신팀장은 그녀가 과연 한 회사의 CEO임에 틀림없구나 하는 감탄의 눈으로, 한 살 위인 그녀를 마치 고귀한 여신인양 우러러 봤다. 그의 눈엔 푸른 눈의 금발 여성들보다, 그녀가 이 자리에서 가장 빛나 보이기만 했다. – 계 속 – ——— The next morning, Team Leader Shin visited Intercos, an Italian makeup manufacturing company, where he attended a presentation on this year’s global color trends. Alongside Assistant Manager Jung and Assistant Manager Nam, he reviewed various samples, testing them and ultimately selecting key color swatches. These swatches would serve as the foundation for … Read more

인식의 싸움 56. 해외출장 (1) 볼로냐 코스모프로프 ① [Battle of Perception 56. Business Trip Abroad (1) The Bologna Cosmoprof Fair ①]

매년 봄이면 화장품업계에 매우 중요한 세계적인 전시회가 이태리 볼로냐에서 열린다. 볼로냐 코스모프로프 페어(Cosmoprof Fair)는 전 세계 화장품 관련 원료, 부자재를 비롯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미용에 관련된 모든 것이 전시되는 대단한 규모의 미용박람회이다.          물론 유명 명품 브랜드들의 전시관은 없지만, 그런 명품 브랜드들에 납품된 우수한 기술(원료)과 포장재 및 각종 디자인을 만날 수 있으며, 명품과는 달리 쉽게 만날 수 없는 각 나라의 참신하고 아이디어 넘치는 제품들을 접하면서 신제품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 및 컨셉적 방향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래서 주로 마케팅, 디자인, R&D, 포장개발 쪽의 팀장들은 매년 코스모프로프에 직원 한 두 명을 데리고 참관을 해왔다. 이번 코스모프로프의 참석자는 민이사를 포함하여 대부분 M&C TFT 멤버들이 각 부서 대표로 선정되어, 일주일간 이태리를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신팀장은 이번 기회에 파리에 있는 미셀리에게 전화를 하여 이태리를 다녀 가는 길에 파리에서 M&C 본사와 미팅을 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다. 신팀장은 이미 M&C 디자인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 컨펌 받은 바 있지만, 아름다운 목업을 자신있게 직접 실물로 보여주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파리 본사와 앞으로 제품 런칭 함에 있어서 상호 협조하고 지켜야할 프로세스를 정립하고 싶었다.       미셸리도 좋은 생각이라고 하며 M&C 파리 본사와 연락을 취해 글로벌 라이센스 최고 책임자인 마담 소피와 함께 미팅 약속을 잡아주었다. 비록 팀원 두 명과 함께 갈 수가 없어 아쉽고 미안함이 있었지만, 태어나 처음 가보는 프랑스와 이태리에 신팀장은 한껏 꿈에 부풀었다..        말로만 듣던 이태리 볼로냐 코스모프로프는 확실히 명불허전,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었다. 각 섹션마다 거대한 규모에 놀라고 전 세계 미용 및 화장품 관련 1,300여 개 업체들의 참석뿐만 아니라 신팀장 일행 같은 참관객들만 해도 14만여 명이나 되었다.            신팀장은 첫 날 디자인, 개발 쪽 사람들과 포장재 쪽 섹션을 돌아보았는데, 디자인 서대리나, 포장개발 김대리가 패키지에 대한 전문가적 깊은 관심으로 부스에서 상담도 하면서 오랜 시간이 소요되자, 이내 홀로 따로 떨어져서 M&C에 필요할 만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데 주력하였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일행은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함께 하고 나서, 그 날 하루 참관한 것에 대해 각자의 정보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들 각 분야의 특성에 맞게 R&D는 원료와 소재, 디자인/포장개발부는 용기와 패키지, 미용연구 정대리는 메이크업 칼라 전문 회사의 부스를 둘러 본 결과 등의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신팀장의 차례가 되어 신팀장은 주로 M&C와 관련되어 얘기를 하였다.         “저는 오늘 포장재 부스를 쭉 돌아봤는데, 매우 독특한 아이섀도 용기가 있어 간신히 사진에 담았습니다. 이건 지금 당장은 적용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추후 후속 제품 디자인에 참조하면 좋을 것 같고, 고민이던 메이크업 베이스와 파운데이션에 맞는 용기를 발견했습니다. 프랑스 용기인데 PE 튜브타입으로 타원형의 디자인이라, 실버 스프레이만 좀 하면 우리 M&C 디자인과 톤 앤 매너(Tone & Manner)도 맞고 매우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내일 서대리와 김대리가 다시 방문해서 디자인적으로 검토해 보시고, 괜찮으면 구체적으로 협상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정대리가 오늘 간 인터코스는 내일 꼭 나랑 R&D 남대리랑 같이 한번 더 갔으면 좋겠어요. 그 자리에서 바로 셋이서 여러 측면의 갈림길에 있는 칼라의 방향을 결정했으면 좋겠네요.”           신팀장은 그 외 관심 있게 눈 여겨 본 용기와 독특한 스타일의 세트 케이스들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렇게 하루를 마감하며 각자의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각 분야의 다른 관점과 시각의 차이를 줄일 수 있고, 혼자서 다 둘러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강할 `수 있어서 그 다음 일정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 계속 ) ——— Every spring, a globally significant cosmetics exhibition is held in Bologna, Italy. The Bologna Cosmoprof Fair is an enormous beauty trade show that showcases everything related to beauty from head to toe, including raw materials, packaging, and accessories for the cosmetics industry worldwide. Although luxury brand booths are absent, the fair provides … Read more

인식의 싸움 55. 마케팅 팀장이 되다 (12) 미용연구 [Battle of Perception 55. Becoming a Marketing Team Leader (12) Beauty Research]

봄이 왔어도 여전히 추위가 기승을 부리며, 새봄을 시샘하는 듯 꽃샘추위가 가실 줄 모르는 3월 초의 어느 날 한 명의 아리따운 여직원이 인사를 하러 왔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미용연구실에 새로 입사한 정대리 입니다. 앞으로 많은 도움 및 부탁 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그녀의 인사는 틀에 박힌 말이었지만 매우 활기차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정대리는 이미 결혼한 30대초반의 유부녀였지만, 미용연구실 직원답게 짙은 화장과 세련된 복장으로 작은 키와 통통한 몸매를 티가 안나게 커버하였으며, 눈이 크고 또렷한 이목구비를 짧은 단발 헤어 스타일로 더욱 부각시킨 것이 뭔가 메이크업 쪽으로 프로페셔널한 느낌이 확 들어왔다. 그녀는 이미 타사에서 많은 품평 및 상품 기획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색조제품에서 중요한 칼라 및 트렌드에 밝아 그 동안 기초화장품 중심인 미용연구실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특별히 M&C를 위해 영입한 인재였다.        화장품 개발에서 R&D만큼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미용연구이다. 미용연구는 말 그대로 미용을 R&D하는 곳이다. R&D가 기술적인 측면에 치우쳐서 화장품의 최신 기술 및 원료를 찾고 개발하는(Research & Development) 곳이라면, 미용연구는 R&D에 부응하여 신제품 개발에 도움이 되는 미용 전반적인 정보, 즉 패션, 칼라,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화장품 트렌드들을 찾아 R&D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신제품 개발 시에는 신제품 내용물의 품평을 주도하여 R&D가 제시하는 다양한 샘플의 사용감과 효과 등을 소비자가 발견할 수 없는 부분까지 전문적으로 평가하는 한편, 신제품 출시에 맞춰서는 신제품을 활용한 미용법을 개발하여 화장품의 활용성을 더욱 높이는 중요한 업무를 수행한다.         미용연구의 업무 중 색조화장품의 경우는 그 사용감뿐만 아니라 특히 칼라가 매우 중요하다. 여성들의 패션은 의상에서 시작해서 의상에 맞는 메이크업이 따라가고 그 다음이 악세사리라고 한다. 따라서 미용연구의 색조 담당자는 세계 패션 트렌드와 유행색 협회에서 발표하는 향후 칼라 트렌드를 함께 접목하여 미리 봄부터 가을의 유행 칼라를 예측, 선정해서, R&D로 하여금 그 칼라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도록 하고 R&D가 제시한 칼라가 실제로 피부에 발랐을 때 제대로 표현되는지를 품평하여 수정 보완하도록 하는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신팀장의 입장에서 정대리는 그 동안 미용연구실에 대해 가졌던 아쉬움을 풀어줄 수 있는 천군만마와도 같은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고, 이후 정대리도 몸은 비록 미용연구실 소속이었지만 마음은 마치 M&C팀에 속한 것처럼 신팀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수년간 지속적으로 M&C에 대해 매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신팀장은 정대리가 각 팀에 인사를 하고 돌아가자 허진희에게 말했다.  “진희씨, 얼른 정대리에게 가서 날부터 잡아라.”  “네? 무슨 날이요?”  “아이 참, 술 한잔 먹어서 얼른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지! 첫 날이지만 오늘이라도 당장 저녁식사 같이 하자고 해봐~!”허진희는 이내 웃으며 알았다는 대답과 함께 미용연구실로 갔다가 30분 정도 후에 되어서야 돌아왔다.   “팀장님, 이미 팀 회식이 있어 다음에 하자는데요?”  “아니 그 얘기 들으려고 그리 오래 걸렸니?”  “수다 좀 떨었어요. 성격 좋으시던데요? 그리고 그렇게 안보이던데 유부녀에요.”   허진희는 그러면서 정대리에 대해 간단한 신상명세와 경력을 얘기해 주었다.  “흠…알았어. 오늘 어디서 한데?”  “회사 뒤 초원가든에서 한데요.”  “좋아, 그럼 오늘 우리도 회식이다. 그리고 나중에 자연스럽게 합치자. 내가 오늘 초원가든에서 한우등심 쏜다~?”단촐한 M&C팀 멤버들은 삼겹살이 아닌 한우라는 말에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어제 밤 정대리 환영회를 빙자해서 오랜만에 신팀장은 마음껏 취했다. 그 동안 두 명의 팀원들도 연일 되는 야근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던 마당인지라 이 참에 속 좀 풀겠다고 소맥 폭탄을 들이댔으며, 미용연구팀의 여성부대와 합류하여 유일한 남자 청일점이었던 신팀장은 계속 받은 건배 제의에 나중에는 2차로 간 노래방에서 있었던 일은 기억조차 나지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온 몸이 쑤시고 목이 아픈 게, 혹시 무슨 큰 실수라도 없었을까 걱정이 되어 신팀장은 팀원들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어제 혹 뭔 일 없었니? 난 도대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목은 왜 이리 아픈지….”  “팀장님, 저도 잘 기억이 가물가물해요.”   조윤희의 대답에 원래 술을 잘 못 마시는 허진희가 이어 말했다.  “별일 없었어요. 정대리님이 워낙 노래도 잘하시고 춤도 잘 추셔서 두 분이 진하게 커플 댄스도 하고 러브샷도 하고…, 음… 맞다~! 팀장님은 무슨 락앤롤을 부르신다며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시고….”   허진희의 장난끼 섞인 말에 신팀장은 큰 일 났구나 싶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새로 들어온 사람하고 첫 날부터 너무 심하게 달린 것 같네. 내 첫인상 이미지가 너무 안 좋은 것 아닐까 걱정되네.”  “걱정 마세요, 팀장님! 정대리님도 피차일반이었으니까요. 맞다~, 하하하~, 정대리님이 테이블에 올라가니까 윤희 언니도… 하하하~. 막 테이블에 올라 춤 추고…”   허진희는 말을 하다가 문득 어제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듣고 보니 신팀장도 문득문득 어제 밤의 일이 끊겨진 영상처럼 떠오르는 것 같았다. 자기도 함께 테이블에 올랐다가 넘어졌던 일이 떠오르자, 그래서 이리 몸이 쑤시고 아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병법 36계에도 미인계가 있는데, 이번에는 드디어 나의 미남계가 통했나 보군, 하하하~”  갑작스런 신팀장의 미남계란 말에 두 사람은 뭐라 차마 말도 하지 못하고, 떫더름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작은 웃음으로 답하였다. 아무튼 허심탄회한 광란의 첫 만남이었던 것 같아 원래 목적은 달성하지 않았나 싶어, 신팀장도 함께 큰 미소를 머금으며 쑥스러움을 모면하려고 하였다. – 계  속 – ————— Spring had arrived, yet the cold still lingered stubbornly, as if envious of the new season. On one such early March day, when the chill refused to let go, a beautiful new female employee came to introduce herself. “Hello? My name is Assistant Manager Jeong, and I have just joined the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