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싸움 78. 매장 프로모션 계획 (1). [Battle of Perception 78. Store Promotion Plan (1)

9월 가을 시즌에 맞춰 브랜드숍을 오픈하기 위해서는 늦어도 8월 중순까지는 매장과 제품, 그리고 오픈 프로모션이 모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모델 선발대회를 통해 론칭 전에 이미 한껏 기대감을 부풀어 놓은 점에서 프리-마케팅(Pre-marketing)은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중요한 건 이제부터였다.      무엇보다도 8월 중에 제품이 반드시 입고되어야 하며, 동시에 거래선과 소비자를 만족할 만한 POP, 카타로그, 판촉물 등이 함께 공급되어야만 했다. 또한 각종 패션잡지 9월 호와 화장품전문지에 M&C화장품의 출시를 알리는 광고와 홍보기사가 실려야 하는데, 잡지 마감 관계로 8월 15일 전에는 광고 디자인도 잡지사로 넘어가야만 했다.     신팀장은 이번 모델 선발대회로 벌써 수 억원의 예산을 사용하였고, 이미 패션 브랜드로 인지도가 높은 M&C였기 때문에 초기에는 TV CF를 하지 않고 잡지 광고만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현재 유통적으로 준비가 미비한 상황에서 TV CF를 하는 것은 공중에 돈을 뿌리는 것과 같은 낭비라 생각했다.        만약 M&C가 기존의 탄탄한 유통의 기초 하에서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 무엇보다도 TV CF가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서울에 직영점 세 곳과 이미 계약하기로 한 전문점이 30여 개뿐이 안되었다. 더욱이 이것 마저도 브랜드숍으로 오픈하는 것 또한 절대로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매장 수를 더욱 늘린 후에 CF를 틀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TV CF에 대해서는 찬반 논란이 없지 않아 있었다. 브랜드숍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화장품 유통구조의 단축과 광고비 절감을 통해 초저가 화장품을 탄생시켰던 M사도 이미 톱스타를 모델로 기용하여 TV CF를 하고 있었으며, 이에 부응하여 후발 주자들도 TV에 광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민이사는 브랜드가 TV에 나와야 앞으로 신규점을 더욱 빨리 모집할 수 있다는 측면을 강조하며, 론칭과 동시에 대대적으로 CF를 틀어야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신팀장은 프랑스에 로열티를 주는 유명한 브랜드란 강점과 함께, 광고판촉비의 효율성을 위해서 중요한 시기에 한번에 터뜨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미 신제품 개발비용과 모델선발대회, 중요 거점지역에 확보한 직영점의 보증금과 임대비 등으로 상당한 경비를 쓴 회사 입장에서, 민이사도 내키지는 않았지만 신팀장의 의견에 손을 들어 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민이사와 신팀장은 점점 다른 의견으로 부딪치며 보이지 않는 갈등의 폭이 깊어가고 있었다.     따라서 중요한 건 화장품전문점을 M&C 브랜드숍으로 빠르게 전환시키는 일이다. 이미 전국적 네트워크를 가진 인테리어 업체를 통해서, 제품 입고 전에 당장이라도 매장공사가 진행될 준비가 다 되어 있었으나, 사업자들의 사정 상 동시다발적으로 오픈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전국의 예비 사업자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먼저 3개 직영점을 시작으로 차례차례 30개점을 오픈하고, 인터넷과 신문, 잡지를 통해 사업자 모집 설명회를 광고하여 전국적으로 개최하면, 분명 매장 수를 파격적으로 늘릴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M&C 매장이 장사가 잘되고 사업자가 돈을 잘 번다는 소문이 나야만 한다. 그리 되면 매장 수는 순식간에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 또한 큰 숙제로써, 신팀장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영업지원팀과 충분한 의논을 했었다.  ( 계속 ) ————– To open the brand shop in time for the fall season in September, the store setup, product supply, and launch promotion must all be ready by mid-August at the latest. Although the pre-marketing phase was successful in generating anticipation through the model selection contest, the real work began now. Above all, … Read more

인식의 싸움 77. 디자인 팀장의 비리(3). [Battle of Perception 77. The Design Team Leader’s Corruption (3)]

“증거를 모을 수 있니?”“네. 이미 통장 사본까지 확보했어요.” 신팀장은 최근 끊었던 담배를 박성준에게 하나 얻어 피어 물었다. “일단, 우리만 알고 있는 비밀로 하자. 이걸 민이사님께 보고하면 가뜩이나 눈에 가시 같던 배부장은 그대로 해고다. 그리고 또 비단 배부장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디자인팀, 구매팀, 개발팀 모두 거래선 관리 상의 문제로 일이 크게 벌어질 수도 있어. 한창 중요한 시기인데 자칫 M&C 출시에도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네. 저도 그래서 먼저 형님에게만 조용히 얘기를 한 거에요.”  “그래. 잘했다. 우리 김대리랑도 같이 의논해 보고 마음의 결정을 해보자.”  신팀장은 잠시 담배를 한 개피 더 피우더니 화제를 돌려 박성준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구매팀 생활은 어때? 내 보기에 완전 체질인 것 같은데?”  “무슨 소리에요? 형님, 힘들어 죽겠어요.”  “잘하는 것 같던데, 뭐가 그리 힘드니?”       “일이 힘든 것보다, 나이도 어린 내가 나이 많은 거래선 사장들에게 막말도 하게 되고, 점점 자신이 피폐해지는 것 같아요. 아버지 뻘 되는 사장들도 있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그런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니면 성격적으로 무슨 변화가 왔는지, 집에서도 그렇고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신경질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내 성격이랑은 안 맞는 것 같아서 여기 오래 있다가는 큰 일 나겠어요.”        “네가 너무 무리해서 그러는 걸 꺼야. 조금 여유를 가지고 일해봐. 이대리도 다음 주면 돌아온다고 하니 좀 나아지겠지.”  “그렇게 난리를 치지 않으면 일이 안 돌아가는 곳이 바로 구매팀이어요. 자칫 M&C 다 펑크납니다. 아무튼 아무래도 이대리님이 오시면 좀 나아지겠죠.”      신팀장은 박성준과 말을 마치고 옥상을 내려오며 그를 끝까지 책임져주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 차마 말로 꺼내지 못했던 속 마음을 다시 한번 다짐했다.   ‘성준아, 조금만 더 참아줘라. 반드시 마케팅부로 데려올게…’   며칠 후 신팀장은 박성준과 김대리와 함께 자주 가는 호프 집에서 만났다. 그간의 사정을 고민한 신팀장은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터 놓았다.  “난 말이야…. 그냥 묻어 뒀으면 좋겠어. 배부장도 한 가정의 가장이고 나이도 이미 40대 중반이 넘었는데 이런 일로 갑자기 실직하게 되면, 아마 다른 회사로 이직하기도 힘들 거야. 이는 한 사람의 일생과 한 가족의 미래가 달린 문제인 것 같아.”      “저도 동의해요. 팀장님 덕분에 이젠 예전 같지 않고 전체적인 시스템으로 일이 돌아가니까, 그런 뒷돈이 거래되는 일은 없어질 것입니다. 사실 다른 마케팅부가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도 저희가 점차 콘트롤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도 고생했던 M&C가 곧 탄생할텐데, 이 고생이 헛되이 되면 안되겠지? 성준아, 너도 그렇지 않냐?” “그럼요. 저도 영업부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크게 한 몫 했잖아요. M&C의 성공적인 론칭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죠.” “그래, 우리 이건 없었던 일로 하자. 그리고 그런 사람은 결국 오래 못 갈 거야. 만약 그 사람이 계속 성공한다면 이 회사가 썩은 회사가 될테지.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가 계속 감시하며 막아보자고.”     회사가 그들 세 명의 어깨에 걸려있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처럼, 세 사람은 마냥 천진하게 웃으며 7월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다. ———————– “Can you gather evidence?”“Yes. I’ve already secured a copy of the bankbook.”Team Leader Shin, who had recently quit smoking, took a cigarette from Park Sung-joon and lit it.“For now, let’s keep this between us. If we report this to Director Min, Section Chief Bae will be fired immediately, which … Read more

인식의 싸움 76. 디자인 팀장의 비리(2). [Battle of Perception 76. The Design Team Leader’s Corruption (2)]

“자자~ 보세요. 립스틱의 내부에 있는 콘(내용물)은 모두 수직 원형으로 되어 있지요. 그리고 이 놈을 원형의 내용기가 받쳐주고, 또 이를 외용기가 한번 더 덮어 주는 게 립스틱 디자인의 일반 적인 사양이란 말이죠.” 박과장은 언제나처럼 옛스럽고 여유로운 말투를 버리고 무척이나 심각하게 말하는 폼이 평상시 그의 모습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말이죠. 이놈의 밑둥을 오른 쪽으로 돌려야 콘이 … Read more

인식의 싸움 75. 매장 프로모션 계획(1). [Battle of Perception 75. Store Promotion Plan (1)]

모델 선발대회 행사 때문에 따로 만나지 못했던 박성준이 갑자기 차 한잔을 하자고 해서 신팀장은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 옥상으로 올라갔다. 사업개발팀에서 구매팀으로 자리를 옮긴 박성준은 기대 이상으로 포장재 거래선 관리를 철저히 하며, 시생산 견본품들을 속속들이 제시하여 왔고, 지금은 한창 수많은 포장재가 각 거래선에서 생산 중이었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견본과 동등한 품질로 양산되도록 품질관리를 하고 최종 … Read more

인식의 싸움 74. 모델 선발 대회 (14) 모델 선발대회 본선. [Battle of Perception 74. Model Selection Competition (14) Final Round of the Model Audition]

드디어 대망의 대학생 모델 선발대회가 개최되는 날이 왔다. 행사는 저녁 다섯 시부터 시작하지만 진행자들은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밤새워 설치한 무대와 조명, 음향을 점검하고 또 점검하였지만, 뭐 하나를 해결하면 또 하나의 문제가 줄을 이어 발생하였으며, 오전 11시부터 진행한 모델후보들의 리허설도 하면 할수록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아 신팀장은 점점 더 속만 타올랐다. 시간은 어느 새 훌쩍 지나 … Read more

인식의 싸움 73. 모델 선발 대회 (13) 사랑스런 조윤희. [Battle of Perception 73. Model Selection Competition (13)]

“저 앞에 족발 집이 있네. 우리 멀리 갈 것 없이 그냥 저기서 간단하게 하자.”신팀장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족발집으로 성큼 걸어가자, 조윤희는 종종 걸음으로 바쁘게 그의 뒤를 따랐다.족발이 나오기 전에 이미 맥주 한잔을 묵묵히 다 비워 갈증 난 목을 축이고 나서야 조윤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팀장님, 요즘 많이 힘드시죠?”“응? 뭘… 우리 모두 다 힘들지. 그래도 … Read more

인식의 싸움 72. 모델 선발 대회 (12) 토사구팽. [Battle of Perception 72. Model Selection Competition (12)]

첫 날 장례식장은 휴일인지라 썰렁했지만, 다음 날이 되어 많은 회사 사람들이 대낮부터 방문하기 시작했다. 각 부서 사람들뿐만 아니라 임원들 및 대표이사까지 상가를 방문했다. 북한에서 홀로 월남하신 아버지인지라 원래 친척이 없어 썰렁했던 장례식장은 어느새 앉을 자리가 없어 사람들이 일부러 자리를 피해 줄 정도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신팀장은 이렇게 찾아준 사람들에게 크게 감사하며, 그들의 방문에 큰 힘이 됨을 … Read more

인식의 싸움 71. 모델 선발 대회 (11) 어머니의 죽음. [Battle of Perception 71. Model Selection Competition (11)]

다음 날 오전 간단한 일정과 함께 본선 진행사항에 대해 본격적인 회의가 진행되었다. 신팀장은 이벤트 대행사가 제시한 두터운 큐 시트를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며 동선과 시간을 일일이 체크하였다.  점심시간이 다 될 때까지 폭풍 같은 미팅에 모두들 지쳐가고 있을 즈음에 신팀장의 휴대폰이 계속 울렸다. 누나였다. 신팀장은 중요한 회의가 방해가 되어 휴대폰을 받지 않고 껐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누나에게 전화를 하였다. 전화기 넘어 다급한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이리 전화를 안받아?”  “응, 중요한 회의 중이라서…”  “어머니 상태가 좋지 않으셔, 빨리 병원으로 와야겠어.”  “뭐라고? 여기 지금 대관령인데 어쩌지? 오래 걸릴텐데…”  “아무튼 빨리 와!”         신팀장은 오후 나머지 일정을 조윤희와 허진희에게 맡기고 한 달음에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했다. 4시간이 되어서야 병원에 도착한 신팀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술 동의서였다. 어머니의 병세가 호전되는 듯하여 그 동안 안심하였는데, 어제부터 갑자기 악화되며 의식을 잃으셔서 이제는 최악의 수단으로 수술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일단 의사는 수술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지만, 문제는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어머니가 마취에서 깨어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으므로, 보호자의 동의 없이는 수술을 진행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신팀장은 어쩔 수 없이 동의서에 싸인을 하였고 급히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술이 시작된 지 채 한 시간도 안되어, 갑자기 의사가 나오며 보호자를 불렀다. 신팀장은 의사의 인도에 따라 수술복에 마스크를 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해부했던 개구리 마냥 어머니가 배를 활짝 벌리고 누워있었다. 신팀장은 충격적인 그 모습에 고개를 돌리며 차마 더 이상 눈을 어머니 쪽으로 돌릴 수가 없었다. 그러자 의사가 다시 신팀장을 수술대로 이끌며 어머니 바로 앞에 그를 세우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열어보니 문제가 심각합니다. 처음엔 위 천공만 막으면 될 꺼라 생각했는데, 이것 보세요. 장들이 다 누렇게 녹아 들었어요. 이 썩은 장을 잘라내지 않으면 아무리 위만 수술한다 해도 살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보호자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푸른 마스크 속에 가려진 신팀장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보호자분! 빨리 결정해야 합니다. 이것 다 수술할까요?” 의사가 다시 재촉하였다. “네… 그렇게 하세요.” 신팀장은 절망적으로 말하고는 수술실을 빠져 나왔다.         어려운 수술이었는지 그 후 7시간이 지나도록 수술은 끝나지 않았다. 수술 대기실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신팀장은 수술대 위의 어머니 모습을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어 계속 멍하니 시계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8시간이 지나서야 집도의가 나와 말했다.   “수술은 아주 깨끗이 잘되었습니다. 힘든 수술이었는데도 환자분도 잘 견디시더군요. 이젠 좀 기다리며 지켜 봅시다.”        회복실에서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진 어머니를 본 것은 새벽이 다 되어서였다. 다행히 그 날은 제헌절이라서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어, 신팀장은 회사 일에 신경 쓰지 않고 그 동안 바빠 자주 오지 못했던 어머니 곁을 지킬 수가 있었다. 산소 마스크에 의존하여 미약한 숨을 내쉬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과 몸은 온통 퉁퉁 부어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손을 꼭 잡은 신팀장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어머니는 마취에서 깨어날 줄을 몰랐고, 생명보조장치에 가녀린 삶을 메달아 뒀던 그 한 숨조차도 거두며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어쩌면 깨어나지 못한 것이 나았을지도 몰랐다. 수술자국으로 프랑켄슈타인처럼 온몸이 찢기고 꿰매여져 퉁퉁 부어 만신창이가 된 몸에 고통의 신음을 하실 어머니가 아니라, 아무런 고통도 모르고 편안하게 떠나신 게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고 신팀장은 스스로를 위안했다. – 계 속 – ————— The next morning, after a brief schedule overview, the main meeting regarding the final competition proceedings began in earnest. Shin meticulously examined the thick cue sheet provided by the event agency, checking each movement and timing in detail. As the intense meeting dragged on until nearly lunchtime, everyone was exhausted. … Read more

인식의 싸움 70. 모델 선발 대회 (10) 합숙 훈련장 방문 [Battle of Perception 70. Model Selection Competition (10)]

카메라 테스트와 개별 면접으로 진행된 모델 선발대회의 예선전이 끝나고 후보 20명이 선발되어 대관령에 있는 리조트로 합숙훈련을 들어갔다. 후보들은 2주간 이곳에서 전문 모델의 워킹(Walking)과 댄스, 그리고 간단한 연기를 배우고 결선 무대에 설 것이다. 결선무대에는 유명 영화감독, 방송국 PD, 메이크업 아티스트, 모델협회장 등의 심사위원들을 모시고 유니버셜아트센터에서 대대적인 행사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화장품 모델이라면 얼굴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이번 행사는 단순히 얼굴만 보고 뽑는 화장품 모델이 아니라, 미래의 스타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실력을 전문가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궁극적으로 다른 목적도 있었는데, 바로 연예부 기자들을 행사에 초청해서 기사화할 만한 멋진 무대가 연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팀장은 팀원들과 이벤트 대행사 사장과 함께 대관령을 찾았다. 이 곳에서 이틀 간 묵으면서 합숙훈련 상황도 살피고 대행사 진행팀과 본선 준비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온 것이다. 행사 주관사의 마케팅 팀장이 온다는 소식에 모델 후보들을 비롯하여 대행사 진행자들은 미리부터 행사가 순조롭게 잘 진행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특히 단체합숙은 짧은 기간 동안의 훈련이다 보니 후보들에 대한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어, 합숙 훈련을 잘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본선에 가기도 전에 탈락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후보들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은 더욱 치열하기만 하였다.       신팀장은 한창 모델 워킹 연습에 여념이 없는 후보들을 찾아 일일이 악수를 하며 격려하였다. 예상과는 달리 뜻밖에 젊은 팀장이 오자 후보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신팀장은 부끄러운 듯 너털 웃음을 남기며, 힘들지만 준비를 잘해서 유니버셜아트센터에서 한 명도 빠지지 않고 꼭 만나자는 짧은 격려의 말을 남기고 얼른 자리를 떠났다. 진행팀 회의실에 오자 이벤트 총괄 감독이 지금까지 진행현황을 보고했다.         “다들 열심히 잘 따라 오고 있는데, 후보들 중 몇 명은 좀 떨어집니다. 그 중 두 명은 아무래도 본선 무대에 서기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감독은 두 명의 이력서와 사진을 신팀장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그 중 여기 이 학생은 도저히 댄스가 안돼요. 단체 댄스를 해야 하는데 이 친구 때문에 진도가 안 나가서 아무래도 이 친구는 중간에 퇴소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나머지 한 명은요?”  “그 학생은 좀 더 지켜봐서 본선에 데려갈지 결정하겠습니다.”  “감독님이 저보다 더 전문가시니까, 알아서 판단해 주세요. 그리고 정 안되면 퇴소시켜야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무대가 꽉 차도록 한 명이라도 더 데려갈 수 있으면 그렇게 해주세요.”        신팀장의 당부에 진행팀은 알겠다며 수긍하였다. 저녁 식사를 하며 신팀장은 다시 한번 진행팀 일행들을 격려하며 내일의 일정과 미팅을 위해, 자꾸 권하는 술을 간신이 자제하고 숙소로 일찍 들어왔다. 그는 옷도 벗지 않은 채 침대 위로 털썩 쓰러져 누웠다.          그 동안 쏟아지듯 몰아 친 수 많은 일들 속에서 어떻게 하루하루가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경주에서 올라오자 마자 제품개발 관련해서 포장재와 컬러 컨펌을 하였고, TFT 미팅과 매장 인테리어 및 디스플레이 방향, 그리고 광고/홍보 계획까지 그가 의사결정하고 진행해야 할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실 민이사가 한 시라도 신팀장을 곁에서 떼어 놓으려고 하지 않는 이유도 다 사정이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박성준이 사업개발팀에서 구매팀으로 자리를 옮겨 병원에 입원한 이대리 대신에 M&C구매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거 신팀장을 응원하며 지지해준 바도 있었던 사장비서였던 지대리가 비서업무에서 벗어나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요청에 의해, 영어도 잘하는 지대리가 사업개발부에 가게 된 대신 박성준이 구매팀으로 오게 된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신팀장의 적극적인 추천도 한 몫을 작용하게 되어, 평소 사업개발팀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했던 박성준과의 관계 회복에도 좋은 계기가 되었다.           박성준은 구매 경험은 없었지만 마케팅과 사업개발팀에 있으며 쌓은 협상능력과 성실함, 그리고 정직함이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서, 신팀장도 기뻐하며 박성준과의 재회를 축하하였다.  구매업무는 이미 이대리가 거래처 및 단가까지 모두 협상을 끝냈고,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한 박성준이라 해도 개발 일정을 챙기며 견본을 컨펌받고 생산발주를 하면 되었지만, 촉박한 일정 때문에 납기에 차질이 없도록 수 많은 거래처를 일일이 전화하고 방문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이점에서 신팀장은 믿을만한 박성준이 있어 더욱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일을 마무리하고 하루가 지난 지금은 이렇게 강원도 대관령에 와 있는 것이다. 신팀장은 샤워를 마치고 들어오며 사온 맥주 한 캔을 꺼내 들었다. 리조트의 넓은 콘도에 오늘은 모처럼 혼자 머물게 되어, 간만에 마음 차분히 내일 있을 미팅을 준비할 수 있었다. 본선대회 큐시트를 보며 VIP 입장 동선과 시간을 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딩동하는 벨소리가 울렸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누가 연락도 없이 오나 궁금했지만, 신팀장은 진행팀 중 누구겠지 하며 무심코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낯 익은 젊은 여자 한 명이 인사와 함께 무작정 방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어? 누구시지?”   신팀장이 자세히 보니 오늘 문제가 있다며 퇴소시켜야겠다고 후보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소개하며 꼭 드릴 말씀이 있으니 시간을 조금만 내 달라고 요청하였지만, 신팀장은 늦은 시간이니 내일 진행팀에 얘기하라며 그녀를 내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신팀장은 그녀를 식탁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그래. 왜 그러신지 여기 앉아서 간단하게 얘기해 보세요.”  “어? 맥주 드시네요? 저도 하나 마시면 안될까요?”  당돌한 그녀의 말에 할 수 없다는 듯이 신팀장은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 줄 알고 있는 듯, 자신이 잘할 수 있다며 기회를 더 달라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신팀장은 이건 자신의 권한 밖의 일이라고 설득하였지만, 그녀는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고 계속 자신의 입장만 늘어 놓으며, 앞으로 잘할 수 있으니 평생의 꿈을 이루게 해달라며 같은 말을 되풀이 하기만 하였다.    더 이상 얘기가 안되겠다는 생각에 신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며 말했다.  “자~ 잘 알겠으니, 이제 그만 나가 주세요. 밤도 많이 늦었습니다. 이거 규정 위반인 거 아세요?”  그때였다. 그녀는 문으로 나가는 척하다 몸을 돌려 침실로 뛰어 들었다. 신팀장이 놀라 따라 들어가자 그녀는 얼른 옷을 벗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무슨 일이라도 할게요. 제발 제게 기회를 더 주세요.”    그녀의 말에 신팀장은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고 웃기기까지도 했다. 할 수 없이 신팀장은 전화기를 들어 감독을 불렀다. 그리고 감독과 대행사 사장이 함께 와서 그녀를 설득하여 간신히 끌어내기까지 30분이 더 걸리고 난 후에야, 신팀장은 사뭇 걱정된 표정으로 감독에게 말했다.   “오늘 일은 없었던 일로 하시고 비밀을 지켜주세요. 잘못 오해가 생길지 모르니…. 그리고 그 후보는 내일 당장 퇴소시키세요. 이런 일이 또 벌어져서는 안됩니다. 철저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별의별 사건에 탈도 많고 말도 많은 행사였다. 또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질지 하는 생각에 그는 또 한번의 깊은 한숨을 내쉰 후, 젊은 여성들이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 저렇게까지라도 하려고 한다는 현실이 슬프기도 하였다. 그는 마시던 맥주를 한숨에 들이키고 그대로 침대로 가서 잠을 청했다. 문득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알몸으로 있었던 젊은 여성의 살 내음이 은은히 풍겨 나오는 듯 하였다. – 계 속 – ————- The preliminary round of the model selection contest, conducted through camera tests and individual interviews, had concluded, and 20 candidates were chosen to enter a training camp at a resort in Daegwallyeong. Over the course of two weeks, the candidates would receive … Read more

인식의 싸움 69. 모델 선발 대회 (9) 신제품 설명 경주출장 [Battle of Perception 69. Model Selection Competition (9)]

다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여섯 시간이나 걸려 경주에 도착한 영업부와 예비 점장들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도 없이 마치 소풍 온 어린 아이들 마냥 활짝 즐거운 표정이 왁자지껄 펼쳐지고 있었다. 일행은 경주에서도 유명한 최고급 호텔에 짐을 풀었다.      평소 최상무는 다른 건 몰라도 유통조직을 동기부여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최고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최고로 대우해야 그들이 최고가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경비를 절약해야 한다는 회사 측 입장과 충돌하기도 하였지만, 최상무는 이에 굴하지 않고 초지일관 자신의 주장대로 해왔다. 사실 이런 특급 호텔비용은 앞으로 그들에게 지불할 판촉비에 비하면 세발의 피였다. 오히려 이럴 때 화끈하게 대우하고 판촉비를 절약하는 것이 회사로서는 더 큰 이익임을 최상무는 잘 알고 있었다.      신팀장도 오늘만은 모든 걸 다 잊고, 다시 영업시절로 돌아가 마음 편히 있고자 하였다. 짐을 풀고 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미 여러 잔의 술이 돌았지만, 마음이 편해서인지 천년의 고도 경주에 와서 그런지 술이 전혀 취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1차가 끝나고 2차로 맥주 한잔을 더 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뿔뿔이 헤어졌다.        신팀장은 오랜만에 만난 영업소장들과 함께 2차를 하러 자리를 옮겼다.  “신팀장, 내일 교육해야 하는데 이렇게 술 마셔도 괜찮겠어?” 문지점장이 말했다.  “제가 원래 음주공부해서 대학 나오고, 술 마시고 난 다음 날 음주운전 면허증도 땄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다 음주로 이루어져서인지 술을 마셔야 일을 더 잘한답니다. 하하하~”       서로들 가벼운 마음으로 우스개 소리를 나누며 서너 잔의 맥주를 마셨을 뿐이었는데, 갑자기 신팀장은 정신을 못 차리고 쓰러져 잠이 들었다. 최근 병원과 회사를 오가며 여러모로 힘든 일에, 때론 야근에 때론 밤샘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였던 지라, 경주에 와서 잔뜩 당겨져 있던 긴장이 일순간 풀어지자 그는 맥을 턱 놓고 말았던 것이다.       그곳에서 조금 더 맥주를 마시고 나서야 일행들은 간신히 신팀장을 이끌고 나와 숙소까지 그를 부축하여 와서 자리에 눕혔다. 다음 날 아침 아무런 기억도 못하는 신팀장을 보며 사람들은 몰래 빠져 나와 어디서 뜨거운 밤을 보냈냐는 등 농짓거리를 했다. 그는 말도 안 된다며 그저 웃어 넘겨 버렸으나, 최근 몸이 자주 적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사치스러운 일일 뿐이었다.       오전 10시부터 2시간에 걸쳐 신팀장은 인상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하였다. 다들 어제 과음한 후라 교육에 집중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던 진행팀의 염려를 깨끗이 날려 버리고도 남았다. 신팀장은 단순히 자료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동영상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음악효과를 활용하여 고객들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들이 쉽게 이해하고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만들었다. 점장들은 열화와 같은 박수와 함께 역시 교육부터도 뭔가 믿음이 가고 다르다는 말을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그때였다. 교육 중에 꺼놨던 신팀장의 휴대폰이 켜지기 무섭게 벨이 울렸다.  “신팀장, 교육 끝났는가?” 민이사의 목소리가 불편하게 흘러 나왔다.  “네, 이사님, 막 끝나고 점심 식사하려고 합니다.”  “그럼 식사 후에 바로 올라 오게. 거기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잖은가?”  “하지만 이사님, 아직 오후 일정도 있고, 돌아가는 차편도 없는데요?”  “차편이 없으면, 그냥 비행기 타고 당장 와! 거기서 놀고 있을 때가 아냐!”        민이사는 영업과 함께 있는 신팀장이 계속 꺼림칙하다고 느꼈으며, 이런 영업과의 단체활동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팀장은 깊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이사님. 아마 포항이나 울산 쪽에 비행기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알아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신팀장은 갑자기 입맛이 사라져 식사도 하지 않고 최상무와 지점장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분이 상한 최상무도 함께 나서며 민이사와 당장 통화하겠다는 것을 간신히 말리며, 그는 호텔 프론트로 가서 비행기 편을 알아봤다. 마침 포항에서 4시에 김포행 비행기가 있다고 하여, 그는 택시를 잡아타고 경주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포항으로 향했다. 갑자기 차창 밖으로 후두둑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굵어져 차창을 강하게 때렸다.       ‘이 비가 답답한 내 마음도 함께 씻어내 주었으면…’  신팀장은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어젯 밤의 과음과 아침부터 열띤 강의로 피곤한 몸이 버스의 굉음 속으로 파 묻혀 점차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계 속 – ————– After a six-hour journey on a tour bus, the sales department and prospective store managers arrived in Gyeongju. Despite the long trip, their faces showed no signs of exhaustion. Instead, they were as cheerful and excited as children on a school picnic, chattering noisily. The group checked into one of the most luxurious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