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싸움 71. 모델 선발 대회 (11) 어머니의 죽음. [Battle of Perception 71. Model Selection Competition (11)]

다음 날 오전 간단한 일정과 함께 본선 진행사항에 대해 본격적인 회의가 진행되었다. 신팀장은 이벤트 대행사가 제시한 두터운 큐 시트를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며 동선과 시간을 일일이 체크하였다.  점심시간이 다 될 때까지 폭풍 같은 미팅에 모두들 지쳐가고 있을 즈음에 신팀장의 휴대폰이 계속 울렸다. 누나였다. 신팀장은 중요한 회의가 방해가 되어 휴대폰을 받지 않고 껐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누나에게 전화를 하였다. 전화기 넘어 다급한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이리 전화를 안받아?”  “응, 중요한 회의 중이라서…”  “어머니 상태가 좋지 않으셔, 빨리 병원으로 와야겠어.”  “뭐라고? 여기 지금 대관령인데 어쩌지? 오래 걸릴텐데…”  “아무튼 빨리 와!”         신팀장은 오후 나머지 일정을 조윤희와 허진희에게 맡기고 한 달음에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했다. 4시간이 되어서야 병원에 도착한 신팀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술 동의서였다. 어머니의 병세가 호전되는 듯하여 그 동안 안심하였는데, 어제부터 갑자기 악화되며 의식을 잃으셔서 이제는 최악의 수단으로 수술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일단 의사는 수술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지만, 문제는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어머니가 마취에서 깨어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으므로, 보호자의 동의 없이는 수술을 진행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신팀장은 어쩔 수 없이 동의서에 싸인을 하였고 급히 수술이 시작되었다.     수술이 시작된 지 채 한 시간도 안되어, 갑자기 의사가 나오며 보호자를 불렀다. 신팀장은 의사의 인도에 따라 수술복에 마스크를 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해부했던 개구리 마냥 어머니가 배를 활짝 벌리고 누워있었다. 신팀장은 충격적인 그 모습에 고개를 돌리며 차마 더 이상 눈을 어머니 쪽으로 돌릴 수가 없었다. 그러자 의사가 다시 신팀장을 수술대로 이끌며 어머니 바로 앞에 그를 세우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열어보니 문제가 심각합니다. 처음엔 위 천공만 막으면 될 꺼라 생각했는데, 이것 보세요. 장들이 다 누렇게 녹아 들었어요. 이 썩은 장을 잘라내지 않으면 아무리 위만 수술한다 해도 살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보호자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푸른 마스크 속에 가려진 신팀장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보호자분! 빨리 결정해야 합니다. 이것 다 수술할까요?” 의사가 다시 재촉하였다. “네… 그렇게 하세요.” 신팀장은 절망적으로 말하고는 수술실을 빠져 나왔다.         어려운 수술이었는지 그 후 7시간이 지나도록 수술은 끝나지 않았다. 수술 대기실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신팀장은 수술대 위의 어머니 모습을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어 계속 멍하니 시계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8시간이 지나서야 집도의가 나와 말했다.   “수술은 아주 깨끗이 잘되었습니다. 힘든 수술이었는데도 환자분도 잘 견디시더군요. 이젠 좀 기다리며 지켜 봅시다.”        회복실에서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진 어머니를 본 것은 새벽이 다 되어서였다. 다행히 그 날은 제헌절이라서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어, 신팀장은 회사 일에 신경 쓰지 않고 그 동안 바빠 자주 오지 못했던 어머니 곁을 지킬 수가 있었다. 산소 마스크에 의존하여 미약한 숨을 내쉬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과 몸은 온통 퉁퉁 부어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손을 꼭 잡은 신팀장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어머니는 마취에서 깨어날 줄을 몰랐고, 생명보조장치에 가녀린 삶을 메달아 뒀던 그 한 숨조차도 거두며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어쩌면 깨어나지 못한 것이 나았을지도 몰랐다. 수술자국으로 프랑켄슈타인처럼 온몸이 찢기고 꿰매여져 퉁퉁 부어 만신창이가 된 몸에 고통의 신음을 하실 어머니가 아니라, 아무런 고통도 모르고 편안하게 떠나신 게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고 신팀장은 스스로를 위안했다. – 계 속 – ————— The next morning, after a brief schedule overview, the main meeting regarding the final competition proceedings began in earnest. Shin meticulously examined the thick cue sheet provided by the event agency, checking each movement and timing in detail. As the intense meeting dragged on until nearly lunchtime, everyone was exhausted. … Read more

인식의 싸움 70. 모델 선발 대회 (10) 합숙 훈련장 방문 [Battle of Perception 70. Model Selection Competition (10)]

카메라 테스트와 개별 면접으로 진행된 모델 선발대회의 예선전이 끝나고 후보 20명이 선발되어 대관령에 있는 리조트로 합숙훈련을 들어갔다. 후보들은 2주간 이곳에서 전문 모델의 워킹(Walking)과 댄스, 그리고 간단한 연기를 배우고 결선 무대에 설 것이다. 결선무대에는 유명 영화감독, 방송국 PD, 메이크업 아티스트, 모델협회장 등의 심사위원들을 모시고 유니버셜아트센터에서 대대적인 행사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화장품 모델이라면 얼굴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이번 행사는 단순히 얼굴만 보고 뽑는 화장품 모델이 아니라, 미래의 스타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실력을 전문가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궁극적으로 다른 목적도 있었는데, 바로 연예부 기자들을 행사에 초청해서 기사화할 만한 멋진 무대가 연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팀장은 팀원들과 이벤트 대행사 사장과 함께 대관령을 찾았다. 이 곳에서 이틀 간 묵으면서 합숙훈련 상황도 살피고 대행사 진행팀과 본선 준비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온 것이다. 행사 주관사의 마케팅 팀장이 온다는 소식에 모델 후보들을 비롯하여 대행사 진행자들은 미리부터 행사가 순조롭게 잘 진행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특히 단체합숙은 짧은 기간 동안의 훈련이다 보니 후보들에 대한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어, 합숙 훈련을 잘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본선에 가기도 전에 탈락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후보들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은 더욱 치열하기만 하였다.       신팀장은 한창 모델 워킹 연습에 여념이 없는 후보들을 찾아 일일이 악수를 하며 격려하였다. 예상과는 달리 뜻밖에 젊은 팀장이 오자 후보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신팀장은 부끄러운 듯 너털 웃음을 남기며, 힘들지만 준비를 잘해서 유니버셜아트센터에서 한 명도 빠지지 않고 꼭 만나자는 짧은 격려의 말을 남기고 얼른 자리를 떠났다. 진행팀 회의실에 오자 이벤트 총괄 감독이 지금까지 진행현황을 보고했다.         “다들 열심히 잘 따라 오고 있는데, 후보들 중 몇 명은 좀 떨어집니다. 그 중 두 명은 아무래도 본선 무대에 서기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감독은 두 명의 이력서와 사진을 신팀장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그 중 여기 이 학생은 도저히 댄스가 안돼요. 단체 댄스를 해야 하는데 이 친구 때문에 진도가 안 나가서 아무래도 이 친구는 중간에 퇴소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나머지 한 명은요?”  “그 학생은 좀 더 지켜봐서 본선에 데려갈지 결정하겠습니다.”  “감독님이 저보다 더 전문가시니까, 알아서 판단해 주세요. 그리고 정 안되면 퇴소시켜야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무대가 꽉 차도록 한 명이라도 더 데려갈 수 있으면 그렇게 해주세요.”        신팀장의 당부에 진행팀은 알겠다며 수긍하였다. 저녁 식사를 하며 신팀장은 다시 한번 진행팀 일행들을 격려하며 내일의 일정과 미팅을 위해, 자꾸 권하는 술을 간신이 자제하고 숙소로 일찍 들어왔다. 그는 옷도 벗지 않은 채 침대 위로 털썩 쓰러져 누웠다.          그 동안 쏟아지듯 몰아 친 수 많은 일들 속에서 어떻게 하루하루가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경주에서 올라오자 마자 제품개발 관련해서 포장재와 컬러 컨펌을 하였고, TFT 미팅과 매장 인테리어 및 디스플레이 방향, 그리고 광고/홍보 계획까지 그가 의사결정하고 진행해야 할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실 민이사가 한 시라도 신팀장을 곁에서 떼어 놓으려고 하지 않는 이유도 다 사정이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박성준이 사업개발팀에서 구매팀으로 자리를 옮겨 병원에 입원한 이대리 대신에 M&C구매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거 신팀장을 응원하며 지지해준 바도 있었던 사장비서였던 지대리가 비서업무에서 벗어나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요청에 의해, 영어도 잘하는 지대리가 사업개발부에 가게 된 대신 박성준이 구매팀으로 오게 된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신팀장의 적극적인 추천도 한 몫을 작용하게 되어, 평소 사업개발팀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했던 박성준과의 관계 회복에도 좋은 계기가 되었다.           박성준은 구매 경험은 없었지만 마케팅과 사업개발팀에 있으며 쌓은 협상능력과 성실함, 그리고 정직함이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서, 신팀장도 기뻐하며 박성준과의 재회를 축하하였다.  구매업무는 이미 이대리가 거래처 및 단가까지 모두 협상을 끝냈고,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한 박성준이라 해도 개발 일정을 챙기며 견본을 컨펌받고 생산발주를 하면 되었지만, 촉박한 일정 때문에 납기에 차질이 없도록 수 많은 거래처를 일일이 전화하고 방문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이점에서 신팀장은 믿을만한 박성준이 있어 더욱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일을 마무리하고 하루가 지난 지금은 이렇게 강원도 대관령에 와 있는 것이다. 신팀장은 샤워를 마치고 들어오며 사온 맥주 한 캔을 꺼내 들었다. 리조트의 넓은 콘도에 오늘은 모처럼 혼자 머물게 되어, 간만에 마음 차분히 내일 있을 미팅을 준비할 수 있었다. 본선대회 큐시트를 보며 VIP 입장 동선과 시간을 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딩동하는 벨소리가 울렸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누가 연락도 없이 오나 궁금했지만, 신팀장은 진행팀 중 누구겠지 하며 무심코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낯 익은 젊은 여자 한 명이 인사와 함께 무작정 방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어? 누구시지?”   신팀장이 자세히 보니 오늘 문제가 있다며 퇴소시켜야겠다고 후보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소개하며 꼭 드릴 말씀이 있으니 시간을 조금만 내 달라고 요청하였지만, 신팀장은 늦은 시간이니 내일 진행팀에 얘기하라며 그녀를 내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신팀장은 그녀를 식탁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그래. 왜 그러신지 여기 앉아서 간단하게 얘기해 보세요.”  “어? 맥주 드시네요? 저도 하나 마시면 안될까요?”  당돌한 그녀의 말에 할 수 없다는 듯이 신팀장은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 줄 알고 있는 듯, 자신이 잘할 수 있다며 기회를 더 달라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신팀장은 이건 자신의 권한 밖의 일이라고 설득하였지만, 그녀는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고 계속 자신의 입장만 늘어 놓으며, 앞으로 잘할 수 있으니 평생의 꿈을 이루게 해달라며 같은 말을 되풀이 하기만 하였다.    더 이상 얘기가 안되겠다는 생각에 신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며 말했다.  “자~ 잘 알겠으니, 이제 그만 나가 주세요. 밤도 많이 늦었습니다. 이거 규정 위반인 거 아세요?”  그때였다. 그녀는 문으로 나가는 척하다 몸을 돌려 침실로 뛰어 들었다. 신팀장이 놀라 따라 들어가자 그녀는 얼른 옷을 벗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무슨 일이라도 할게요. 제발 제게 기회를 더 주세요.”    그녀의 말에 신팀장은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고 웃기기까지도 했다. 할 수 없이 신팀장은 전화기를 들어 감독을 불렀다. 그리고 감독과 대행사 사장이 함께 와서 그녀를 설득하여 간신히 끌어내기까지 30분이 더 걸리고 난 후에야, 신팀장은 사뭇 걱정된 표정으로 감독에게 말했다.   “오늘 일은 없었던 일로 하시고 비밀을 지켜주세요. 잘못 오해가 생길지 모르니…. 그리고 그 후보는 내일 당장 퇴소시키세요. 이런 일이 또 벌어져서는 안됩니다. 철저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별의별 사건에 탈도 많고 말도 많은 행사였다. 또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질지 하는 생각에 그는 또 한번의 깊은 한숨을 내쉰 후, 젊은 여성들이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 저렇게까지라도 하려고 한다는 현실이 슬프기도 하였다. 그는 마시던 맥주를 한숨에 들이키고 그대로 침대로 가서 잠을 청했다. 문득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알몸으로 있었던 젊은 여성의 살 내음이 은은히 풍겨 나오는 듯 하였다. – 계 속 – ————- The preliminary round of the model selection contest, conducted through camera tests and individual interviews, had concluded, and 20 candidates were chosen to enter a training camp at a resort in Daegwallyeong. Over the course of two weeks, the candidates would receive … Read more

인식의 싸움 69. 모델 선발 대회 (9) 신제품 설명 경주출장 [Battle of Perception 69. Model Selection Competition (9)]

다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여섯 시간이나 걸려 경주에 도착한 영업부와 예비 점장들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도 없이 마치 소풍 온 어린 아이들 마냥 활짝 즐거운 표정이 왁자지껄 펼쳐지고 있었다. 일행은 경주에서도 유명한 최고급 호텔에 짐을 풀었다.      평소 최상무는 다른 건 몰라도 유통조직을 동기부여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최고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최고로 대우해야 그들이 최고가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경비를 절약해야 한다는 회사 측 입장과 충돌하기도 하였지만, 최상무는 이에 굴하지 않고 초지일관 자신의 주장대로 해왔다. 사실 이런 특급 호텔비용은 앞으로 그들에게 지불할 판촉비에 비하면 세발의 피였다. 오히려 이럴 때 화끈하게 대우하고 판촉비를 절약하는 것이 회사로서는 더 큰 이익임을 최상무는 잘 알고 있었다.      신팀장도 오늘만은 모든 걸 다 잊고, 다시 영업시절로 돌아가 마음 편히 있고자 하였다. 짐을 풀고 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미 여러 잔의 술이 돌았지만, 마음이 편해서인지 천년의 고도 경주에 와서 그런지 술이 전혀 취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1차가 끝나고 2차로 맥주 한잔을 더 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뿔뿔이 헤어졌다.        신팀장은 오랜만에 만난 영업소장들과 함께 2차를 하러 자리를 옮겼다.  “신팀장, 내일 교육해야 하는데 이렇게 술 마셔도 괜찮겠어?” 문지점장이 말했다.  “제가 원래 음주공부해서 대학 나오고, 술 마시고 난 다음 날 음주운전 면허증도 땄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다 음주로 이루어져서인지 술을 마셔야 일을 더 잘한답니다. 하하하~”       서로들 가벼운 마음으로 우스개 소리를 나누며 서너 잔의 맥주를 마셨을 뿐이었는데, 갑자기 신팀장은 정신을 못 차리고 쓰러져 잠이 들었다. 최근 병원과 회사를 오가며 여러모로 힘든 일에, 때론 야근에 때론 밤샘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였던 지라, 경주에 와서 잔뜩 당겨져 있던 긴장이 일순간 풀어지자 그는 맥을 턱 놓고 말았던 것이다.       그곳에서 조금 더 맥주를 마시고 나서야 일행들은 간신히 신팀장을 이끌고 나와 숙소까지 그를 부축하여 와서 자리에 눕혔다. 다음 날 아침 아무런 기억도 못하는 신팀장을 보며 사람들은 몰래 빠져 나와 어디서 뜨거운 밤을 보냈냐는 등 농짓거리를 했다. 그는 말도 안 된다며 그저 웃어 넘겨 버렸으나, 최근 몸이 자주 적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사치스러운 일일 뿐이었다.       오전 10시부터 2시간에 걸쳐 신팀장은 인상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하였다. 다들 어제 과음한 후라 교육에 집중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던 진행팀의 염려를 깨끗이 날려 버리고도 남았다. 신팀장은 단순히 자료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동영상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음악효과를 활용하여 고객들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들이 쉽게 이해하고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만들었다. 점장들은 열화와 같은 박수와 함께 역시 교육부터도 뭔가 믿음이 가고 다르다는 말을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그때였다. 교육 중에 꺼놨던 신팀장의 휴대폰이 켜지기 무섭게 벨이 울렸다.  “신팀장, 교육 끝났는가?” 민이사의 목소리가 불편하게 흘러 나왔다.  “네, 이사님, 막 끝나고 점심 식사하려고 합니다.”  “그럼 식사 후에 바로 올라 오게. 거기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잖은가?”  “하지만 이사님, 아직 오후 일정도 있고, 돌아가는 차편도 없는데요?”  “차편이 없으면, 그냥 비행기 타고 당장 와! 거기서 놀고 있을 때가 아냐!”        민이사는 영업과 함께 있는 신팀장이 계속 꺼림칙하다고 느꼈으며, 이런 영업과의 단체활동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팀장은 깊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이사님. 아마 포항이나 울산 쪽에 비행기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알아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신팀장은 갑자기 입맛이 사라져 식사도 하지 않고 최상무와 지점장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분이 상한 최상무도 함께 나서며 민이사와 당장 통화하겠다는 것을 간신히 말리며, 그는 호텔 프론트로 가서 비행기 편을 알아봤다. 마침 포항에서 4시에 김포행 비행기가 있다고 하여, 그는 택시를 잡아타고 경주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포항으로 향했다. 갑자기 차창 밖으로 후두둑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굵어져 차창을 강하게 때렸다.       ‘이 비가 답답한 내 마음도 함께 씻어내 주었으면…’  신팀장은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어젯 밤의 과음과 아침부터 열띤 강의로 피곤한 몸이 버스의 굉음 속으로 파 묻혀 점차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계 속 – ————– After a six-hour journey on a tour bus, the sales department and prospective store managers arrived in Gyeongju. Despite the long trip, their faces showed no signs of exhaustion. Instead, they were as cheerful and excited as children on a school picnic, chattering noisily. The group checked into one of the most luxurious … Read more

인식의 싸움 68. 모델 선발 대회 (8) 민이사와의 갈등 [Battle of Perception 68. Model Selection Competition (8)]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매우 바쁜 건 알지만, 7월 첫째 주 즈음에 경주에서 대리점 사장들을 모시고 사업설명회를 하려고 하는데, 자네는 꼭 참석해야겠어. 그 때 제품 교육과 마케팅 전략도 함께 설명해 주면 좋겠는데…. 괜찮겠는가?”     “네? 아…, 제가 자리를 오래 비울 수가 없는 상황이라 바로 대답을 드리기가 곤란한데요.”  “아니야! 이건 매우 중요한 일이야. 마케팅 팀장이 빠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자네 시간에 맞춰 일정을 조정하도록 할테니 무조건 참석해야 해. 적절한 시간을 영업지원팀장에게 알려주게.”        최상무는 매우 단호하게 말을 맺었다. 신팀장은 어머니가 걱정되기도 하고 제품 개발에 모델선발대회까지 겹쳐 도대체 일초의 시간도 아쉬울 판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몇 개월간 질질 끌었던  매장 인테리어를 확정하고, 300개 제품을 어떻게 디스플레이 할지도 결정해야 할 때였다.     다행히 최근에 주얼리 프랜차이즈 점포에서 VMD(Visual Merchandiser) 경험이 풍부한 우수한 직원을 뽑은 바가 있어서 큰 걱정은 없었지만, 화장품 경험이 전혀 없는 직원이었기 때문에 당장은 그가 함께 해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문득 다 떨쳐버리고 지금 당장 어디론가 멀리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신팀장. 내가 보기에 자네도 너무 지쳐있어. 이 참에 경주에 가서 머리도 식히고 몸도 추스러 보게나. 경주에서 제일 큰 특급호텔이니 하루 강의하고 다음 날 하루 남들 관광할 때 푹 쉰다는 생각으로 따라 오게.” “네, 알겠습니다. 민이사님께 보고 드리고, 일정을 통보 드리겠습니다.”         민이사의 미간에 깊게 패인 주름을 보고 민이사가 신팀장이 영업과 함께 경주에 간다는 것이 무척 못마땅해 한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민이사는 한 동안 말이 없다가 이내 짜증 섞인 말투로 말을 꺼냈다.       “신팀장! 지금 얼마나 바쁜데 3일씩이나 자리를 비워도 되는 것인가?”  “네, 바쁘긴 해도 새로운 점장들에게 제품 방향을 설명도 하고 앞으로의 비젼도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이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 나도 알아. 당연히 해야지. 하지만 그건 제품 론칭 후에 해도 되는 일이란 말이야.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일단 영업에서 지들끼리 하라고 그래!”         “이사님, 아직 제품도 출시하기 전에 우리 회사에 오겠다고 하며, 다른 회사 제품 매입을 정리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기다리다 지쳐 떨어져 나가면 안 되는 중요한 순간이기도 하죠. 이럴 때 마케팅 팀장인 제가 직접 참석하여 그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이 그들에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상무께서도 꼭 와야 한다고 강조하셨고, 제 생각에도 분명 이번에는 가야 될 것 같습니다.”      “알아! 나도 최상무 전화 받았어. 에이…, 자넨 말이야 다 좋은데, 너무 영업적이고 영업이랑 너무 가까워서 문제야. 그래서 영업 출신들은 마케팅 시키지 않으려고 했는데 말이야.”  민이사는 신팀장이 그 동안 영업과 너무 가깝게 어울려 다니고 영업 편에 서서 일하는 것이 못내 못마땅하다가 그 동안 쌓인 속내를 드러냈다. “이사님, 마케팅 4P에서 유통도 마케팅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이사님께 배웠습니다. 그런 것이 아닌지요?”  “그런 게 아니라 지금 모델 선발대회가 막바지인데다가, 새로운 매장 디자인은 어떡할 건가? 그런데도 자리를 비워도 되냐 하는 말이야! 그리고 한창 용기 견본들이 나오고 있는 신제품 진행사항도 다 일일이 컨펌해줘야 하지 않나?” 신팀장의 말 대꾸에 민이사의 짜증은 점점 화로 변하며 언성이 더 높아졌다.   “네. 일에 차질이 없도록 팀원들과 대행사와 업무정리하고 다녀오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았어. 다녀 오게.”         민이사는 더 이상 뭐라 말하지 않고 고개를 확 돌려 신팀장을 외면하며 말을 맺었다. 민이사의 방에서 나오며 신팀장은 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일이 진행되면 될수록 민이사와 최상무의 사이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으며, 두 사람은 마치 고부 간의 갈등처럼 신팀장을 사이에 두고 상대방을 비난하며 한심하고 답답하게 여겼다.         최상무는 화장품 시장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마케팅을 한다며 현실과 안 맞게 뜬 구름만 잡으며 잘난 척만 한다고 민이사를 비난하였고, 민이사는 영업은 유통을 확보하여 마케팅 전략에 따라 매장에 제품만 제대로 유통하면 되는데 뭘 안답시고 마케팅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냐며 최상무를 비난하였다.         문제는 신팀장이 영업 출신이다 보니, 영업상황을 잘 모르는 민이사를 위해 영업적인 상황을 이해시켜주기 위해 말한 것들이 발단이 되어 민이사는 신팀장이 자꾸만 최상무의 편에 서서 자신에게 대응한다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사실 민이사는 5년동안 화장품 회사를 떠나 다국적 기업인 생활용품 회사에서 근무하였기 때문에, 급변하는 화장품 시장에 대해서는 현실감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신팀장은 그런 점을 보완하고자 한 것인데, 생활용품적인 마케팅 로직으로 꽉 차있던 민이사에겐 오히려 불신의 발단이 된 것이었다.        어느 날 영업 조직과 유통계획에 대해서 얘기가 오갔을 때였다. 민이사는 영업은 제품을 제대로 깔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고, 결국 판매는 영업이 아니라 마케팅이 광고와 프로모션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 신팀장은 그런 점에서 자신의 의견을 소신 있게 말했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었다.           “이사님, 화장품 시장은 생활용품과 다릅니다. 생활용품은 소품종 대량 생산 품목으로써 제품이 복잡하지 않고 경쟁 브랜드도 많지도 않으며, 단일품목별 개별 브랜드가 따로 되어 있어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광고를 통해 소비자가 쉽게 인지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이라는 안정적이고 고정적인 유통과 가격질서 속에서 소비자가 진열되어 있는 상품을 보고 직접 선택해서 구매할 수 있는 시장입니다.  따라서 이사님 말씀처럼 마케팅에서 광고를 통해 브랜드를 인지시키고 영업은 유통을 확장해서 제품을 잘 입점시키고 좋은 매대에 진열시킨 후 온팩(On-Pack), 인팩(In-Pack) 등의 판촉을 통해 소비자를 유인하는 것이 중요한 게 맞습니다.            하지만 화장품은 다품종 소량생산 제품으로 수백 개의 회사가 수 천 개의 브랜드와 수 만개의 품목을 가지고 경쟁하는 혼란스러운 시장입니다. 게다가 유통도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있고 가격질서도 무질서해서, 매장 판매사원의 교육을 통해 우리 제품을 충분히 숙지시켜야 하고, 유통마다 다른 가격 및 각종 장려금과 프로모션 등으로 매장 판매원이 우리 브랜드를 권장판매하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영업이 단순이 유통채널에 제품을 배치시키는 것을 넘어 판매원의 교육과 정책적인 접근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신팀장은 그 동안 자신을 믿어주고 지지해준 민이사였기 때문에 스스럼 없이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며 진심으로 민이사를 깨우쳐 주려고 얘기한 것이었지만, 민이사의 안색이 싸늘하게 식으며 그의 작은 눈이 뱀처럼 반짝이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였다. 그 날 이후로 민이사는 신팀장이 너무 영업적이라 마케팅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최상무 밑에 있었던 사람이라 아직도 최상무 편이 아닌가 하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계 속 – ————- “So, here’s the thing… I know you’re extremely busy, but we’re planning to hold a business briefing session for our franchise store owners in Gyeongju around the first week of July, and you must attend. It would be great if you could also provide product training and explain the marketing … Read more

인식의 싸움 67. 모델 선발 대회 (7) 어머니의 원 [Battle of Perception 67. Model Selection Competition (7)]

병원에는 온 가족들이 이미 와 있었다. 어머니는 산소호흡기를 끼고 의식을 못 차리고 계셨다. 순간 왈칵 가슴이 치밀어 오르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복막투석을 한 것이 복막염을 일으켜서 몸에 독소들이 쫙 퍼져서 그렇데. 일단 독소를 제거하고…, 근데 더 이상 투석을 못할지도 모른다는데, 어떡하면 좋으니?”누나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일단 기다려 봐야지. 조금만 기다려 보자.”신팀장은 오히려 누나를 위로해 주며 … Read more

인식의 싸움 66. 모델 선발 대회 (6) 전사적 행사. [Battle of Perception 66. Model Selection Competition (6)]

“이번 모델 선발 대회는 대행사에게만 맡겨서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경영진이 모여 있는 6월 월간회의 석상에서 신팀장은 모델 선발 대회의 목적과 실행계획을 설명한 후, 최후의 변론을 하는 변호사의 심정처럼 경영진을 향해 간곡히 말을 하였다. “이 일은 또한 마케팅부문의 일개 팀인 M&C팀 하나 만의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M&C의 성공은 현재 어려운 상황에 처한 우리회사의 사활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 Read more

인식의 싸움 65. 모델 선발 대회 (5) 성동격서. [Battle of Perception 65. Model Selection Competition (5)]

“그래 맞아. 바로 36계에서 말한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이다.”아니나 다를까, 매번 상황마다 딱 들어맞는 신팀장의 고사성어가 드디어 나오자, 사람들은 한껏 기대에 부풀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을 향해 소리치고 난리법석을 떨어도 사실은 서쪽을 공격하는 것이지. 우리는 일반인 모델을 뽑는다고 대대적인 행사를 진행하며, 광고, 홍보에 각종 프로모션도 하는 거야. 하지만 진정한 목적은 모델을 뽑는 그 자체가 아니라, … Read more

인식의 싸움 64. 모델 선발 대회 (4) [Battle of Perception 64. Model Selection Competition (4)]

이미 여러 잔이 오가는 동안 눈이 반쯤 감긴 팀원들을 보고 미용연구팀 정대리가 최근에 새로 입사한 영업지원팀의 김우진을 데리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니, 이게 뭡니까? 우리들은 뼈빠지게 일하는 동안, 팔자 좋게 술이나 마시고 있어도 되는 거에요?”  그녀는 항상 부럽다는 표현을 핀잔 섞인 투덜거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입버릇처럼 된지 오래였다.   “우리도 논 거 아냐. 지금까지 얼마나 열띤 회의를 했는데? 아무튼 우리가 낸 지금까지의 아이디어를 설명할 테니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의견을 좀 더 줘봐.” “어~? 우진이도 함께 왔구나. 어서 와~. 너도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함께 오라고 불렀다. 그런데 윤희씨, 성준이는 안 온데?”       신팀장은 박성준에게 전화했던 조윤희를 바라 보았지만, 조윤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가로 저을 뿐이었다. 조윤희 혼자 마케팅에 합류한 이후 신팀장과 박성준은 더욱 거리가 멀어져서, 신팀장이 아무리 전화를 해도 전화를 받으려고 하질 않았다. 신팀장은 박성준에 대해서 항상 마음이 마냥 무겁기만 하였다.        이때 정대리가 항의하듯 말했다.  “너무 부려 먹으려고만 하지 말고, 우리도 일단 맥주 한잔부터 합시다.”  신팀장은 얼른 맥주를 시켜 다 같이 한 잔을 하였다. 그러다 뭔가 주제를 토의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이 띄엄띄엄 한 명씩 합류하는 바람에 이내 여러 번의 건배만 오가게 되었을 뿐, 도대체 진도가 나가지 않고 미팅은 점차 먹자판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시간이 자꾸 갈수록 신팀장은 점점 더 취해 가는 것만큼이나 더욱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순간 기회를 낚아 챈 그는 얼른 말하고 싶은 주제를 꺼내 방향을 전환하고는, 순간을 놓칠 새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그 동안의 내용을 설명해줬다. 한 동안 설왕설래가 오가며 서로들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시간은 하염없이 지나기만 했고, 술만 더 마시게 되는 회식 분위기는 점점 더 건질 것이 없는 것만 같아, 신팀장은 괜히 다른 이들도 불렀나 후회스럽기까지도 했다. 그러다 한 순간 이미 혀가 꼬부라진 정대리가 술잔을 높이 들며 내뱉듯이 말했다.        “까지 것 다해버려~, 모델도 뽑고, 이벤트도 하고, 광고도 하고, 기사 만들어서 신문에도 내고…. 다해 버리면 될 거 아니에요?”  “정대리, 누군들 모르겠어. 예산이 한정되어 있으니 다 할 수가 없잖아. 아예 정대리 같이 이쁜 일반 사람을 모델로 뽑는다면 모를까?”  정대리의 말에 신팀장은 답답하다는 듯이 대답을 하였다. 그 순간 그의 머리에 뭔가 한 줄기 빛이 스치는 것 같았다.  “어? 이것 봐라?”         신팀장이 뭔지 모를 아이디어의 실체를 찾아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김우진이 말했다.  “우리 일반인을 대상으로 모델 선발 대회를 하면 어떨까요?”  순간 모든 사람들의 눈이 영업지원팀의 한 신입사원에게 꽂혔다.       김우진은 대학에서 불문과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MBA를 전공한 석사출신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곱슬머리를 길게 휘날리는 그는 제법 옷도 세련되게 입고 자칭 파리지앙이라 스스로를 칭하고 다니었지만, 남들 보기에는 그저 키 작고 평범한 전형적인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생긴 것과는 달리 판촉 담당자로서 지금까지 기존의 틀과는 다른 참신한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게 마음에 들어, 신팀장도 함께 마케팅에서 일하고 싶어 몹시 탐을 내는 직원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그는 김우진을 일부러 찾아 이리로 오게 한 것이었다.        “우리 타겟이 직장여성이니까, 직장인 모델 선발대회가 맞겠네요.”– 계 속 – —————- As multiple rounds of drinks were passed around, some team members’ eyes were already half-closed. At that moment, Jeong Daeri from the Beauty Research Team brought along Kim Woo-jin, a new member of the Sales Support Team, and sat down, saying, “What is this? While we’re working our bones off, you guys are … Read more

인식의 싸움 63. 모델 선발 대회 (3) [Battle of Perception 63. Model Selection Competition (3)]

“민이사님, 도저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사무실에서는 여기저기에서 끊임없이 전화도 많이 오고 사람들도 쉼 없이 찾아와서, 도저히 팀원들이랑 차분히 미팅하기도 힘듭니다. 저희 팀에게 반나절의 자유를 주셨으면 합니다.”       파리에서 돌아온 지 이주일이 지났지만, 신팀장은 아직도 어떻게 해야 제품도 나오기 전에 미리 브랜드숍을 하겠다는 점장들을 확보할 수 있을지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스러웠다. 뭐 좀 일하다 보면 뚝딱 하루가 그냥 지나가는 것이 왜 이리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지, 그는 급기야 초조해지기 까지 했다. 그래서 그는 큰 마음을 먹고 민이사를 찾아갔다.       “자유라니? 무슨 말인가?”  “지금부터 팀원들을 데리고 사무실을 떠나 휴대폰도 꺼놓고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으며 자유로운 마음으로 미팅을 하고 오겠습니다.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밤을 새워서라도 하겠습니다. 장소도 묻지 말아주세요. 내일 아침에는 정상 출근하겠습니다.”  “다른 팀들도 있는데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네! 그렇지 않으면 안될 것 같습니다. 또 이렇게 일주일을 더 보낼 수는 없습니다.”  민이사는 내심 ‘요놈 봐라’ 하며, 대리팀장이 확실히 당돌하다고 생각 하다가도 이렇게 하는 것이 크리에티브에 좋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결국 허락을 해주었다.  “알겠네. 다른 팀에 티 나지 않게 한 명씩 슬금슬금 빠져 나가게. 단 내일 아침 꼭 기대한 성과가 있길 바라겠네.”       점심 식사 후 바로 벌건 대낮에 나온 M&C팀 일행은 마치 처음 와본 익숙하지 않은 길에 나온 사람들처럼 막막한 것이 막상 갈 곳이 없었다. 회사 뒷 골목에 이리 환한 시간에 나온 것도 참으로 오랜만의 일인지라, 마치 외딴 곳에 내버려진 아이들마냥 이곳이 무척 낯설기만 보였다. 야외로 나가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고, 주변 커피숍은 너무 혼잡했다. 신팀장은 할 수 없이 회사 뒤 골목의 단골 호프집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5시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곳이었지만, 다행히 호프집 주인이 안에 있어 문을 열어주었다.        “사장님, 죄송하지만 지금 좀 들어가도 될까요?”  “아직 영업준비가 안되었는데…?”  “아~! 괜찮습니다. 우리 좀 조용히 회의하고 싶어서 그러니 방해하지 않을게요. 그냥 호프 500cc 세 개랑 오징어 땅콩 하나만 주세요.”  호프집 주인은 대낮부터 웬 홍두깨 같은 일인가 하며 의아해 하였지만, 워낙 신입 때부터 단골 손님인지라 차마 마다하지 못하고 일행을 안으로 들였다.         불 꺼진 어두컴컴한 호프집에 어느 정도 눈이 익숙해지자, 신팀장은 가볍게 맥주 한 모금으로 입가심을 하며 말을 꺼냈다.  “대낮부터 웬 술타령이냐 하겠지만, 난 대학시절에도 도서관에서 공부가 잘 안되면 혼자 내려와서 맥주 석 잔 정도 마시고 나야, 머리가 빨리 돌아 가서 집중력도 더 좋아지고 공부도 더 잘 되더라고.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일단 우린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도록 회사에서 떠난 게 중요한 거야. 지금부터 휴대폰도 다들 끄고, 평소와 다른 일탈에 대한 자유로움을 느껴봐. 그리고 나서 찬찬히 문제를 해결해 나가 보자.”          일행은 맥주 500cc를 한 잔 다 비우면서 블로냐와 파리에 있었던 일을 비롯하여, 그간 있었던 자질구레한 얘기를 나누었다가 점차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 이제부터 우리만의 브레인 스토밍(Brain Storming)을 하는 거야. 이미 TFT를 통해 하는 것 봤으니 다들 알겠지만, 이건 누가 옳다 나쁘다를 떠나서 많은 아이디어를 내는 게 중요해. 한마디로 다다익선이지. 어떻게 우리는 M&C 브랜드숍을 확보하고, 브랜드를 론칭하기 전까지 그들을 기다리게 할 수 있을까?”      대낮부터 500cc 맥주 잔이 여러 번 오가는 동안 세 사람은 티져 광고, 이벤트, 장려금, 유명 톱모델, 진열 제품 지원, 판촉물을 미리 나누어주자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허심탄회하게 쏟아냈지만, 특별히 확 구미를 당기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덧 저녁이 되고 퇴근 시간이 되자 신팀장은 몇몇 TFT멤버들을 불러 아이디어를 더욱 증폭시키고자 했다.– 계 속 – ————- “Director Min, I can’t seem to come up with any ideas. In the office, there are constant phone calls and people coming in and out, making it impossible for my team to have a focused meeting. I’d like to ask you to give us half a day of freedom.” Two weeks had passed … Read more

인식의 싸움 62. 모델 선발 대회 (2) [Battle of Perception 62. Model Selection Competition (2)]

오후가 되어 어느 정도 숙취가 가신 신팀장은 다시 예전의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에게 제품의 콘셉트부터 최종 디자인까지 두 시간에 걸쳐 설명을 마치자 슬쩍 영업 쪽에 화두를 던졌다.      “이 사업의 성공여부는 뭐니뭐니 해도 새롭게 만들어지는 브랜드숍을 빠른 시일 내에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품이 출시되고 1호점이 오픈하면 사업설명회를 통해 바로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로 쫙 깔아 나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미리미리 우수한 화장품전문점들 중에서 프랜차이즈 후보점들을 리스트하고, 우리와 거래할 점주들과 사전협의를 해야겠죠.”     “그런데 제품도 없이 디자인 사진 몇 장만 가지고 어떻게 점주들과 상담을 하죠?” 부산지역 문지점장이 질문하였다. 신팀장도 이것이 가장 큰 풀리지 않는 고민인지라 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았다.        “맞습니다. 어려운 일이죠. 그러니 여러분들 같은 베테랑들을 벌써부터 미리 뽑은 것 아니겠습니까? 마케팅에서도 좋은 안을 준비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또한 M&C 브랜드숍에서는 철저하게 가격할인을 하지 않는 정가제를 실시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요즘처럼 화장품 가격이 무너져 화장품전문점들이 수익을 보지 못하는 시점에서 M&C 브랜드숍을 모집하는데 가장 큰 장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프랑스 유명 브랜드에 소비자가도 다른 경쟁 브랜드숍들보다 높은 편이라서, 매장에서의 하루 실판매도 높고 부가가치도 크리라 보입니다.”         “그건 맞아요. 이미 중대형 화장품전문점들도 브랜드숍이나 기업이 직접 운영하는 대형 체인점들 때문에 갈 곳을 잃고 있으며, 브랜드숍들의 저가공세에 많은 전문점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매장을 전환하거나 문을 닫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저가 브랜드숍을 운영하는 점주들은 수량적으로 더 많이 팔려 바쁘긴 무지 바쁜데, 과거에 비해 수익률은 떨어진다며 무척 불만이라 하더군요. 분명히 그 중에 건실한 전문점이나 저가 브랜드숍에 불만있는 점주들을 잘 포섭하면 승산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브랜드숍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송대리가 신팀장을 거들어 주었다.        “그래도 뭐 보여줄 것이 있어야 하지…. 아무리 회사 믿고 나를 믿고 따라와라 해도 말이야~.” 문지점장이 또 다시 불만을 토로하였다.“그리고 가격이 더 높다는 것은 어쩌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 아닙니까? 전국의 수많은 전문점에선 할인판매를 하고 있고, 브랜드숍에선 저가 공세를 하고 있는데, 우리만 독야청청 중고가에 할인도 않하다가 소비자가 비싸다고 외면하면 어떻게 하나요?” 대전의 김과장도 불편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아, 그걸 제가 말씀 안 드렸군요. M&C는 처음부터 우후죽순처럼 아무에게나 매장을 허락하지않을 것입니다. 철저한 선택과 집중을 할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파레토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죠? 80/20의 법칙이라고도 부르는데, 매출적으로 보면 20%의 주력제품이 매출의 80%를 차지하고, 20%의 유명 영화배우가 80%의 영화 흥행실적을 올리고 있으며, 20%의 부자가 80%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화장품 시장도 상위 중대형 전문점의 매출이 전체의 70~8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단 전국에서도 대도시 주요상권에서 판매력이 우수한 중대형 전문점을 거점으로 해서 100개 매장만을 선별하여 우선적으로 브랜드숍으로 전환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매장 수도 많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영업2부는 소수의 매장을 대상으로 철저히 브랜드 이미지와 가격질서를 유지, 관리하며 거래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영업하기도 더 수월할 것입니다.”         이내 장내가 술렁거리며 사람들은 서로들 이렇다 저렇다 하며 오랜 시간 동안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뜻을 품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자신이 없어하는 표정으로 바뀌는 것을 신팀장은 놓치지 않았다. “자자~, 여러분~! 잠시만유~!” 서울 강북 박지점장이 특유의 넉살스러운 충청도 사투리로 말을 꺼내며 장내를 정리하였다.  “열띤 논쟁에 시간도 많이 지나버렸고, 난 벌써 배가 고픈데 말이여~, 오늘은 그만들 하시고, 우리 신팀장 한번 믿고 좋은 방안을 기다려 보는 걸로 해보면 어떨까유~. 내 최상무님께 가서 법인카드 얻어 올 테니 우리 다같이 쐬주나 한잔 합시다 그려~”         시간은 벌써 5시가 넘어 가는 상황이었다. 모두들 동의하며 회의실을 빠져 나가는 중에 박지점장이 신팀장에게 다가와 말했다.  “워쪄~, 오늘 아침에 보니 술 냄새가 장난이 아니던데…. 그래도 함께 가야지~? 중요한 사람들인데 말이여~.”   “그러죠. 뭐~, 이미 술 다 깼습니다. 언제 제가 술자리 마다한 적 있나요?”   “그려~. 내 이래서 신팀장이 좋다니까 말이여~.”      박지점장과 헤어지고 자리로 돌아오는 신팀장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제품도 나와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이 무슨 수로 후보자들과 거래를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전문점주들이 다른 회사의 브랜드숍으로 전환하지 않고 우리회사를 믿고 기다려 줄 수 있는 특별한 뭔가가 절실하기만 했다.  ‘휴~, 오늘도 또 술이구나. 또 얼마나 달려야 할지….’   오늘 하루가 이렇게 또 저물어가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 하나로 그는 오늘도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었다.– 계  속 – ———— Afternoon arrived, and Team Leader Shin had shaken off most of his hangover, returning to his usual self. He finished explaining the product’s concept and final design to the people gathered in the meeting room, taking two full hours. Then, he casually tossed a question to the sales team. “The success of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