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사장님! 안녕하세요?”
그는 직원들 눈을 생각해서 깍듯하게 호칭을 붙이며 인사했다. 그제서야 신대리에게 눈길을 돌린 문선배가 바쁜 와중에도 특유의 환한 웃음을 지으며 기쁘게 그를 맞았다.
“이야, 신대리, 어서 와! 바쁜데 어쩐 일이야?”
“뭐, 그냥 지나가다가 들렸어요.”
“그래? 근데 내가 지금 많이 바쁜데, 모처럼 손님도 많고, 가게 마감도 해야 하고…. 괜찮으면 좀 기다릴래? 내가 1시간 후면 좀 한가해질 것 같은데.”
“네 그럴게요. 가게도 좀 둘러보고, 신제품들도 좀 구경하고 그러죠.”
“그래 좀 둘러 보고 나서, 요기 뒤 창고 안에 소파가 하나 있으니까, 거기에서 좀 기다려줘.”
문 선배는 카운터 뒤 작은 문을 가리키며, 냉장고에서 음료수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아참, 나도 이거 사왔는데, 냉장고에 뒀다가 나중에 직원들이랑 드세요”
신대리도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드링크제를 건낸 후, 매장을 둘러보려 했지만 워낙 혼잡해서 구경하기가 쉽지 않자 금방 포기하고 카운터 뒤 창고로 들어갔다.
비좁은 창고 벽에는 공장에서나 봄직한 앵글로 벽장을 대신하여 많은 제품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반면, 바닥에는 온통 여러 회사에서 들어온 판촉물 박스와 카다로그 및 포스터 뭉치들이 뒹굴고 있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문득 옆 모퉁이에 오래 된 검은 소파가 보였다. 소파는 누가 버리고 간걸 주워온 듯이 겉껍질이 헤지고 갈라져서 누런 속살이 흉물스럽게 드러나 있었지만, 신대리는 개의치 않고 소파 위 어지럽게 널려있는 신문들을 치우고 털썩 주저 앉았다.
“신대리 늦어서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오늘 따라 유난히 손님들이 많네? 신대리가 손님들을 몰고 온 건가? 하하~”
문선배의 목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어느덧 10시가 다 되어 있었다. 이미 두 시간이 지난 후였다. 요즘 매장들을 돌아 다니며 신경을 많이 써서 무척 피곤했었는지, 신대리는 비좁고 지저분한 소파였지만 깊고 달게 잔 것만 같았다.
“응, 이제 다 끝났어요? 빨리 술 한잔 하러 가자, 형.”
신대리는 길게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그래, 요 앞 서서갈비로 가자. 오늘 돈 좀 벌었는데, 소갈비로 한턱 낼게. 서서갈비지만 앉아서 먹는 곳이야, 하하하.”
문선배의 쾌활한 웃음이 벌써부터 그의 기분을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술이 여러 잔 도는 동안 문선배는 그 동안 화장품전문점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얘기를 여러 갈래로 풀어놓았다. 한마디로 매출이 꾸준하지 못해, 어떨 때는 완전히 공치는 날도 있을 정도로 어렵다는 것이다. 한 달 중 반만이라도 오늘만 같았으면 일할 맛이 날텐데, 실상은 이 지역이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신대리도 1호선 남영역은 고정고객 보다는 유동 고객이 많은 곳이라, 언뜻 보기에는 사람이 많아 보여 상권이 좋아 보이지만, 술집 또는 음식점이 아닌 화장품이나 의류 등의 매장을 운영하기에 그리 좋은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신대리도 현재 문선배의 신세타령을 계속 들어줄 형편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형, 나도 고민이 좀 있어요.”
신대리는 말할 틈을 간신히 찾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문선배의 말을 끊었다.
“형은 매장을 하니까, 다른 회사 정책에 대해 잘 알 수 있잖아요? 혹시 내가 타사 정책을 체계적으로 입수할 수는 없을까요?”
“글쎄, 다들 매출실적 등급에 따라 다르게 프로모션을 하니까, 전체적인 거 파악 하려면 다리 품을 많이 팔아야겠지.”
“그러게요. 내가 그 일을 며칠 해봤는데, 할 짓이 아니더라구… 정확한 자료 얻기도 힘들고, 시간과 돈만 낭비한 것 같아요. 아예, 형처럼 협조적인 전문점을 지역별로 선정해서 정기적으로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더 좋겠다 싶기도 해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 화장품 장사하는 사람 중에 우리 회사 출신들도 많잖아? 내가 OB 모임에서 한번 얘기해볼까?”
“아니에요. 그러면 정보가 너무 우리회사에 유리한 쪽으로 치우칠 것 같아서….”
신대리는 소주 한잔을 들이키고는 마치 매우 쓴 약을 먹은 것처럼 깊은 인상을 쓰며 고기 한 덩어리를 입에 한 가득 머금은 채 대답했다. 그러고는 잠시 뜸을 들이며 또 다른 소주 한잔과 함께 입안의 고기를 간신히 삼키고 나서 계속 말을 이었다.
“이번 주 내내 매장을 방문하다가 내 나름대로 생각한 게 있어요. 이른바 안테나 매장이란 것을 운영할까 하거든요.”
“안테나 매장? 그게 뭔데?”
문선배의 질문에 신대리는 간단하게 안테나 매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원래 안테나 매장은 신제품을 본격적으로 출시하기 전에 소비자의 반응을 테스트 하기 위해 회사가 직접 운영하는 일종의 시범 매장이에요. 주로 의류회사에서 많이 하는데, 한 마디로 말해서 판매나 수익보다는 순전히 신제품에 대한 테스트 마케팅을 하는 곳이죠. 그래서 이곳은 소비자의 반응을 직접 그 자리에서 들을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신제품을 홍보할 수도 있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가 있어요. 이렇게 안테나 매장에서 수집한 소비자의 반응과 정보를 종합해서, 신제품을 개선하고 보완하여 나중에 진정으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지금 그게 네 조사업무랑 무슨 상관이냐? 우리회사에서 그런 매장을 만든다고? 야~ 택도 없다, 택도 없어.”
“아니, 형~, 지금 당장 매장을 어떻게 만들어요?”
신대리는 답답하다는 듯이 다시 한번 소주 한잔을 머금고 나서는 말을 이었다.
“전국의 전문점을 지역별, 규모별로 분류해서, 정기적으로 설문을 통해 모니터링 하면 어떨까 해요. 그 대신 감사의 뜻으로 시용품을 다량으로 지원해주는 거죠. 다시 말하면, 기존에 있는 주요 화장품 매장들을 안테나 매장처럼 활용하겠다는 거에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회사 정책에 대한 장, 단점을 모니터링 하는 것은 고객의 소리라는 측면에서 좋을 것 같은데, 타사 정책에 대해서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지, 그리고 적은 표본조사가 전국 상황을 대표해 줄 수 있는지가 의심스러워요.”
그러나 문선배는 신대리의 고민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신난다는 듯이 소리를 쳤다.
“야~! 그거 좋은 생각이다. 신대리 나도 껴주라. 나도 요즘 너무 어려워서 그런지 샘플이 너무 부족해. 꼭 나도 거기 껴줘야 해! 내가 설문에 성실히 응해줄게.”
“참~ 내…, 형은 진짜, 마음이 완전히 콩밭에만 가 있는 거 아니에요?”
신대리의 투정에 문선배는 갑자기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했다.
“사실 내가 좋은 생각이 있어. 너도 잘 알겠지만, 다른 회사에서도 너 같은 놈들이 우리 매장에 수도 없이 오거든. 나야 한가하면 좀 만나주고 바쁘면 짜증내고 쫓아냈지만, 그 중 A사에 다니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너랑 성이 같은 신과장이야. 이 친구가 사람이 참 괜찮아서 금방 친해졌거든. 근데 말이야…, 우리 일단 한 잔 마시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
문선배는 잠시 말을 끊고 술을 한 모금 들이키고는, 고기 몇 점을 정성스레 상추에 쌓더니 한아름 입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마치 일부러 그러는 듯이 오랫동안 천천히 꼭꼭 씹어 먹기 시작했다.
“그래서요?”
신대리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말을 재촉했으나, 문선배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담배 한 대를 꺼내 느긋이 한입 빨고 나서, 특유의 너스레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 그 신과장이 말이야~.”
“형! 정말 이럴 꺼야?”
“아~! 알았다, 알았어, 좀 기다려봐! 자식, 급하기는….”
“신과장도 너랑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원래 A사는 업계 1위라서 그래도 시장 영향력이 크니까 정보가 더 많은 것 같지만, 더 양질의 정보가 필요한 듯했어. 어느 날 너랑 똑 같은 고민을 내게 털어 놓더라. 나도 그때는 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는데, 오늘 네 이야기를 들으니까 갑자기 생각난 건데, 아예 이 참에, 내가 너를 신과장과 만나게 해줄 테니 두 신씨가 함께 잘 사귀어 보라고.”
신대리는 순간 그 동안의 고민이 다 풀리는 것 같아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성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맞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먼저 신과장을 만나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그게 괜찮으면 다른 회사의 시장조사 멤버들을 계속 포함시켜 10대 화장품 회사들로 멤버를 확장시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어. 이야~, 형 진짜 고마워! 그 신과장 꼭 소개시켜줘야 해. 대신에 내가 형 꼭 안테나 매장으로 선정해 줄게.”
“그래 좋다. 이게 바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것 아니냐? 하하하! 건배 한 번 하자.”
“그래 건배!”
어쨌든 뭔가 돌파구가 하나씩 만들어지는 것 같아서인지, 그날 밤 신대리는 오랜만에 즐겁게 마음껏 취할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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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Moon, hello!” He greeted politely, using a formal title out of consideration for the other employees. Only then did Moon turn his gaze toward Assistant Manager Shin, greeting him with his characteristic bright smile, despite being busy.
“Wow, Assistant Manager Shin, welcome! What brings you here when you’re so busy?” “Oh, I was just passing by.” “Is that so? But I’m really busy right now. We have a lot of customers, and I still have to close the store… Do you mind waiting a bit? I should be free in about an hour.” “Sure, I’ll do that. I’ll take a look around the store and check out the new products.” “Alright, feel free to browse, and if you need a break, there’s a sofa in the back storeroom. You can wait there.” Pointing to a small door behind the counter, Moon grabbed a drink from the fridge.
“By the way, I brought this too. You can keep it in the fridge and share it with the staff later.” Shin handed him an energy drink as if he had just remembered. He then tried to look around the store but quickly gave up due to the overwhelming crowd, heading to the storeroom instead.
The cramped storeroom was lined with shelves, like those found in a factory, holding stacks of products. The floor was littered with promotional material, catalogs, and poster rolls from various companies, leaving barely any space to walk. In one corner, Shin noticed an old black sofa. Its surface was cracked and peeling, revealing yellow stuffing beneath, looking like it had been picked up off the street. Shin, however, didn’t care. He moved the scattered newspapers aside and collapsed into the sofa.
“Sorry to keep you waiting, Assistant Manager Shin! Did you wait long? There are so many customers today. Did you bring them all? Haha~” Moon’s voice woke Shin from his nap. It was already close to 10 p.m. Two hours had passed. It seemed he had fallen into a deep sleep on the cramped, messy sofa, likely due to the fatigue from visiting so many stores recently.
“Are you done now? Let’s go grab a drink, hyung.” Shin stretched widely as he spoke. “Sure, let’s go to that nearby standing galbi place. I made some good money today, so I’ll treat you to beef ribs. It’s a standing galbi place, but you get to sit down, haha!” Moon’s cheerful laughter already seemed to lift Shin’s spirits.
As the drinks flowed, Moon began sharing stories about running his cosmetics shop. In short, the sales were inconsistent, with some days being so slow that he didn’t sell a single item. If only half the month was as good as today, he’d feel more motivated to work, but the area was unpredictable. Shin knew this too. Namyeong Station on Line 1 had a lot of foot traffic, but mostly from people passing by. It wasn’t the kind of location with a solid customer base, and while it seemed like a bustling area, it wasn’t an ideal spot for stores selling cosmetics or clothing. Yet Shin had his own concerns to address and couldn’t just sit there listening to Moon vent.
“By the way, hyung, I have a bit of a dilemma too.” Shin cut in, seizing the opportunity to voice his thoughts. “Since you’re running a store, you’re probably well aware of the policies of other companies, right? Is there any way I could systematically gather information on their strategies?” “Well, each company tailors its promotions based on sales tiers, so you’d have to put in a lot of footwork to get a full picture.” “Exactly. I’ve tried doing that for a few days, and it’s just not worth it… The data is hard to obtain, and it feels like a waste of time and money. I’m thinking it might be better to cooperate with stores like yours, ones that are more collaborative, and gather information regularly.” “That’s not a bad idea. There are a lot of people in the cosmetics business who used to work for our company, right? I could bring it up at an alumni meeting.” “No, that wouldn’t work. Then the information would be too skewed in favor of our company.”
Shin downed a shot of soju and grimaced, as if he had swallowed a bitter pill. He stuffed a large piece of meat into his mouth, paused for a moment, washed it down with another shot, and finally continued.
“I’ve been thinking about it while visiting stores this past week. What if we set up what’s called an ‘antenna store’?” “Antenna store? What’s that?” Moon asked, prompting Shin to briefly explain the concept.
“An antenna store is a kind of test store that companies operate to gauge consumer reactions before officially launching a product. It’s mostly used in the fashion industry. Basically, it’s a place where the focus isn’t on sales or profits but purely on test marketing for new products. This way, you can hear consumer feedback directly and naturally promote the new products, killing two birds with one stone. You take the feedback gathered from the antenna store and use it to improve and refine the product before launching something that consumers will really want.”
“But how does that relate to your market research work? Is our company planning to open such stores? No way, that’s not happening.” “Hyung, how can we open stores like that right now?” Shin sounded frustrated as he gulped down another shot and continued.
“What if we categorize key cosmetic shops across the country by region and size, and regularly survey them? As a token of appreciation, we’d provide a large supply of samples. In other words, we’d use the existing major stores as antenna stores. The issue is, while it might be useful for monitoring our company’s policies from a customer feedback perspective, I’m not sure how reliable the data on competitors would be, and whether such a small sample size would represent the national market.”
But Moon, uninterested in Shin’s concerns, suddenly lit up with excitement and raised his voice. “Hey, that’s a great idea! Count me in. I’ve been having a hard time lately because we don’t have enough samples. Make sure I’m included! I’ll answer every survey diligently.” “Hyung, seriously… Is your mind just on free samples or what?” Shin grumbled, but Moon burst out laughing.
“Actually, I’ve got an idea too. You know how tons of people like you from other companies come to my store? If I have time, I meet them; if I’m busy, I chase them off. But there’s this one guy from Company A, also named Shin. We hit it off because he’s a nice guy. Anyway… Let’s have another drink, and I’ll tell you more.” Moon paused to take a swig of his drink, carefully wrapped some meat in lettuce, and shoved the entire bundle into his mouth. Then, as if on purpose, he chewed slowly, savoring every bite.
“So, what about him?” Shin urged, unable to contain his impatience. Moon, however, took his time lighting a cigarette, taking a long drag, and then smiled as he began to speak again. “Hahaha… That Shin guy…” “Hyung! Are you serious right now?” “Alright, alright, hold your horses! Geez, you’re impatient…”
“Shin from Company A has been having the same problem as you. Company A is the market leader, so they have a big influence, but it seems like they still need more quality information. One day, he came to me with the exact same problem you’re talking about. At the time, I didn’t have a solution, but after hearing your idea today, it hit me. I’ll introduce you to him, and you two can get along and work together.” Shin felt a surge of excitement, as if all his worries had suddenly been lifted. He wanted to jump up and shout with joy right there.
“Yes! That’s it! First, I’ll meet Shin and exchange information. If it works out, we can gradually include other companies’ market research teams and expand it to cover the top 10 cosmetics companies. Hyung, you’re a lifesaver! Please, introduce me to him. And in return, I’ll make sure to include your store as one of the antenna stores.”
“Sounds good. This is a win-win for both of us. Let’s toast to that!” “Cheers!” With a breakthrough seemingly within reach, Shin was able to drink to his heart’s content that night, enjoying a long-overdue sense of relief.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