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58. 중국이 저지른 역사왜곡 : 중독(中毒) (1)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58. Distortion of History Committed by China (1)]

[춘추필법의 악폐] 일찍이 공자는 노나라 242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하여 [춘추]라 이름 지었습니다. 이 책은 주나라 왕실을 종주로 삼는 大一通사상과 尊王攘夷 정신을 표방하였습니다. 그 후 중국 사서들은 이 [춘주]를 역사 서술의 표준으로 삼았는데, 중국 사서의 편찬 원칙은 다음 세 가지의 ‘춘추필법’으로 요약됩니다. 첫째, 중국에 영광스러운 일은 한껏 부풀려 쓰면서 수치스런 일은 감춘다(爲國諱恥)둘째, 중국은 높이면서 주변 나라는 … Read more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57. 한국사를 잃게 된 3대 요인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57. Three Major Causes of the Loss of Korean History]

동방 한민족은 가장 오래되고 경이로운 역사를 이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시원 역사가 송두리째 잘려 나가 역사 단절의 아픔을 겪고 있는 비극의 주인공입니다. 어찌 하여 한민족은 자신의 역사를 잃고 미궁에 갇혀 버리게 되었는가? 그 결정적 요인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외적의 우리 사서 탈취와 소각, 우리 손으로 자행한 사서 말살 때문에 현존하는 한국의 고유 사서가 … Read more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56. 서양 교과서 속의 한국사.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56. Korean History in Western Textbooks]

세계 강대국 중의 하나인 미국의 교과서들을 보면, 앞에서 살펴본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을 수용하여 ‘4세기 초까지 한반도의 전부 혹은 절반이 중국의 영토였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미국 3대 교과서 출판사 중의 하나인 글렌코 맥그로 힐에서 간행한 세계사(2004)에는, “BCE109년경 한국은 중국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한 왕조가 몰락한 후 반도의 지배권을 되찾았고, 313년까지 신라, 백제, 고구려 세 왕국이 건국 … Read more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55. 일본과 중국 교과서 속의 일그러진 한국사.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55. Distorted Korean History in Japanese and Chinese Textbooks]

창세 역사와 문화를 잃은 한국인은, 고대 동북아 문명의 주인공이었던 본연의 모습을 전혀 기억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정신적 불구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한국인의 원형질을 형성하는 시원 문화와 역사를 잃어버린 것은 곧 모든 한국인이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 것이며, 또한 온 인류가 그 시원 역사를 잃어버린 것이기도 합니다. 한민족은 현 인류의 뿌리 문명을 개척한 주체입니다. 따라서 한국인의 상고 역사 소실은 … Read more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54. 고려의 칭제건원과 그 이후.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54. Goryeo’s Imperial Aspirations and Their Aftermath]

후신라와 대진이 공존한 남북국 시대를 계승한 고려는, 고구려의 후예라는 의식이 확고하였고, 대진과 마찬가지로 황제국 체제를 지향하였습니다. 이러한 지향은 고려의 정치 제제에서 먼저 드러납니다. 고려의 정치는 3성(중서성, 문하성, 상서성)과 6부(이, 호 예, 병, 형, 공)체제였습니다. 유교의 명분론에 따르면 성省이나 부部는 제후국에서 사용할 수 없고 천자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호칭입니다. 또 관에서 쓰는 용어도 천자국의 것이었습니다. 예를 … Read more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53. 대진(발해)의 멸망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53. The Fall of Daejin (Balhae)]

발해인은 자신들을 스스로 고구려의 후예라 생각하였습니다. 대진 무황제는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대진을 ‘고구려 땅을 차지하고 부여 전통을 계승한 나라’(속일본기)라고 하였습니다. 또 일본인들도 발해에 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 곳에 ‘발해는 옛 고구려국’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후대의 기록에서도 일본인들은 한민족의 국통이 고구려-대진(발해)-고려로 이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또 중국의 옛 사료들이 한결같이 발해 건국을 고구려의 멸망과 연계시킨 것도 발해가 고구려의 … Read more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52. 대진(발해)의 건국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52. The Founding of Daejin(Balhae)]

백제는 나중에 신라에 병합되었고(660), 고구려는 나당 연합군에게 망한 후 유장 대중상과 그의 아들 대조영이 세운 대진으로 이어졌습니다. 고구려가 망할 대 대중상이 동쪽으로 동모산에 이르러 성을 쌓고 새 나라를 열어 ‘고구려를 회복하여 부흥한다’는 뜻에서 나라 이름을 후고구려라 하였습니다. 대중상이 죽고, 그 아들 대조영이 당나라군을 격파하고 6천 리 강역을 개척하여 고구려의 옛 영토를 상당히 회복하고 국호를 대진으로 … Read more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51. 북부여를 계승한 고구려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51. Goguryeo, the Successor of Northern Buyeo]

북부여는 비록 고조선을 계승하였지만, 고조선의 전 영역을 흡수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열국분열시대가 시작되어 고조선의 옛 영토에는 북부여, 동부여, 서부여, 낙랑국, 남삼한, 옥저, 동예 등 여러 나라가 형성되었습니다. 열국(여러 나라)시대는 그 후 사국(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시대를 거쳐 약 100년간의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시대로 변화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북부여의 국통은 어디로 계승되었을까요? 고주몽이 세운 고구려로 계승되었습니다. 북부여의 마지막 단군 6세 고무서는 … Read more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50. 일본에 진출한 부여족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50. The Expansion of the Buyeo People into Japan]

부여족은 일본열도에도 진출하였습니다. 그래서 초기 일본 왕실은 부여계에서 나왔습니다. 일찍이 기다 사다기치(1871~1939)는 일본 왕실의 조상이 부여, 백제계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1921년에 기다는 “부여는 한반도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를 건국했을 뿐 아니라, 4세기에 일본열도로 건너와 나라를 세웠다. 적어도 한국의 삼국과 일본의 건국 사이에 모종의 관련이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고문헌을 연구하여 유물, 언어, 신화, 풍습 등 다방면에서 한반도와 … Read more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49. 서방으로 진출한 부여족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49. The Westward Expansion of the Buyeo People]

주류 강단사학계는 부여 역사를 외면하지만, 단채 신채호가 한국 민족을 부여족이라 부를 정도로 부여사는 한민족사의 골간을 이룹니다. 신용하교수는 부여가 최소한 BCE5세기부터 CE5세기까지 약 천여 년 동안 만주 일대에 존재하였고, 4세기 전반까지 동북아의 최선진국이었다고 말합니다. 5세기는 환단고기가 전하는 북부여에서 분파된 마지막 부여인 연나부부여(서부여)가 멸망한 때와 일치합니다. 신용하교수에 의하면, 4세기 말경 부여족의 일파가 중앙아시아의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위치한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