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48. 북부여의 구국 영웅, 고두막한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48. Northern Buyeo’s National Hero: Godumakhan]

북부여는 4세 단군에 이르러 역사적인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BCE 109년, 흉노의 무릎을 꿇린 한 무제는 수륙 양군을 동원하여 우거(위만의 손자)가 다스리던 번조선을 침공하였습니다. 하지만 바다를 통해 번조선을 침공한 누선장국 양복도 육로로 침공한 좌장군 순체도 번조선 군대에게 패하였습니다. 무제는 어쩔 수 없이 강화회담에 임하였으나 사신 위산은 회담에 실패하고 그 대가로 무제에게 처형당하였습니다. 다시 전투가 재개되었지만, … Read more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47. 북부여의 건국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47. The Founding of Northern Buyeo]

대단군의 통치권이 약화되고 부단군과 지방 군장들의 목소리가 커지던 고조선 말기에 한민족의 새 역사가 개창되었습니다. 바로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한 것입니다. 해모수는 요하 상류에 위치한 고조선의 제후국인 고리국 출신으로 단기 2095년(환기 6959, BCE239)에 웅심산 (지금의 길림성 서란)에서 기두하였습니다 (삼성기-상, 북부여기). 그 후 백악산 아사달을 점거하고, 당시 47세 고열가단군의 빈자리를 대신하던 오가五加 부족장의 6년 공화정을 철폐하였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 Read more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46. 고조선의 종말 – 삼한관 경제의 와해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46. The Fall of Gojoseon]

동북아의 천자 나라로 발전을 거듭하던 고조선은 21세 소태단군 말기 무렵, 개국 이후 첫 번째 국가 위기 상황을 맞이하였습니다. 국가 운영의 근간인 삼한관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상나라 정벌에 공을 세운 개사원 지역의 욕살(지방장관) 고등과 해성 욕살 서우여 사이에 일어난 권력 투쟁이 그 발단이었습니다. 단군은 순행 길에 옥좌를 이양할 의사를 밝히며 서우여에게 제위를 넘기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 Read more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45. 고조선의 의식주 문화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45. Clothing, Food and Housing Culture of Gojoseon]

<고조선의 복식 문화> 고조선 영역이었던 요령성에서 청동기 문화가 시작된 때는 적어도 BCE2500년 경이고, 중국 황하 유역의 청동기 문화는 이보다 늦은 BCE2200년경에 시작 되었습니다. 이러한 고조선의 앞선 청동기 문화는 농기구, 제기, 무기 등의 제작 기술 수준도 높였지만, 직물 생산도구의 발전도 가져왔습니다. 직물 생산 도구의 향상은 사직물(누에고치 실로 만든 천), 면, 마 등의 생산을 보편화시켰을 뿐 아니라, … Read more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44. 고조선의 문자와 예악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44. The Writing & Music System of Gojoseon]

[고조선의 문자] 고대문명을 이루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문자의 사용입니다. 고조선 이전에 배달을 건국했을 때 우리 민족은 이미 문자 생활을 영위하였습니다.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 “환웅천황께서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녹도(사슴 발자국 모양)의 글로써 천부경을 기록하게 하였다‘라고 한 것을 보면, 배달 시대에 녹도라는 문자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조선에는 3세 가륵단군이 새 글자를 만들기 전에 진서라는 상형문자가 있었습니다. … Read more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43. 고조선의 경제생활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43. Economic Life of Gojoseon]

고대의 중요한 산업은 농업입니다. 때문에 토지 제도는 국가의 안정과 발전에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고조선은 2세 부루단군 때부터 정전제라는이상적 토지 제도를 시행하였습니다. 흔히 중국의 주나라 때 처음 실시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고조선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나중에 중국으로 전파된 것입니다. 고조선은 안정적 토지 제도를 바탕으로 조세 제도도 갖추었습니다. 수확한 곡물을 세금으로 바쳤는데, 8세 우서한 단군 때 생산량의 20분의 1을 … Read more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42. 고조선의 거석, 고인돌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42. Megaliths and Dolmens of Gojoseon]

고조선은 높은 수준의 청동기뿐 아니라 거석 유적에 속하는 고인돌도 많이 남겼습니다. 고인돌은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에 나타난 돌무덤 형식의 하나로 동북아시아와 서유럽 일대에 거쳐 많이 나타납니다. 아시아에서는 특히 고조선의 영역이었던 만주와 한반도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한반도의 경우 정확한 숫자를 모를 정도로 많은데 대략 4만기 정도로 추정합니다. 전북 고창과 같이 100여 기 이상 밀집된 곳도 있습니다. … Read more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41. 찬란한 청동기 문명을 꽃 피운 고조선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41. The Flourishing Bronze Age Civilization of Gojoseon]

기존의 강단 사학계는 한국의 청동기 시대가 기껏해야 BCE1300년을 거슬러올라가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한국사의 청동기 시대는 그보다 천 년이상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한민족이 BCE2500년경에이미 청동을 사용하였음을 보여주는 유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서 지역의 하가점하층 문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문화는 황하 유역의 BCE2200년경, 시베리아 지역의BCE1700년경보다 이른 시기에 시작된 청동기 문화입니다. 내몽골의 적봉시를 중심으로발해만 일대, … Read more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40. 유라시아 대제국을 세운 몽골족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40. The Mongol People Who Established the Eurasian Empire]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단군세기 4세 오사구단군 조에는 단군이 아우 오사달을 ‘몽고리한’에 봉하였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BCE2137년의 일입니다. 그런데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東胡동호라는 족속이 나옵니다. 동호는 만리장성 너머 몽골과 만주 일대에 걸쳐 살던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부른 명칭으로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데, 이 동호에 몽골족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전국시대에 동호가 주로 교류한 나라는 연나라입니다. BCE300년경 동호는 연의 장수 진개를 인질로 … Read more

환단고기(桓檀古記) 이야기 39. 서아시아와 발칸반도까지 진출한 돌궐족 [Korean Hwandan Ancient History 39. The Göktürks’ Expansion into West Asia and the Balkans]

단군세기에는 흉노의 시조에 대한 언급뿐 아니라 돌궐계인 ‘강거’에 대한 기록도 나옵니다. 사기에서 흉노의 서쪽에 자리 잡은 유목민으로 소개되는 강거가 반란을 일으키자 3세 가륵 단군이 지백특에서 토벌하였다는 것입니다. 지백특은 티베트를 가리키는데, 18세 동엄 단군 때 지백특 사람이 공물을 바치러 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고조선의 활동 영역이 티베트 인근까지 뻗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양 … Read more